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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Dec 29. 2023

부산 여행

연휴 동안 부산에 다녀왔다.

"모든 여행은 정확히 그 속도만큼 더 따분해진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에릭와이너 / 어크로스출판그룹(주) / p.82)라는 말에 더욱 공감한다.

여행 상품들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그런 여행은 나를 유혹하지 않았고, 이미 정해진 코스가 정해져 있는 여행은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할지까지 계획되어 있는 여행, 그리고 관광과 유흥을 위한 여행은 더욱 내키지 않았는데, 우리가 여행을 마음먹을 때 쉽게 접할 수 있는 여행 정보는 그런 것들 뿐이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전혀 자극하지 않았다.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을 자극했던 것은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었을 때였다. 홍명희는 당대에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지만 우리에게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유는 홍명희가 월북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진짜 천재가 맞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고 논란이 많은 '이상' 같은 작가는 교과서에까지 실려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임꺽정은 홍명희가 일제 때 사라져 가는 우리의 것을 남기기 위해 조선일보에 오랫동안 연재하면서 우리의 것을 기록하고자 했던 의지가 담겨 있는 책이다.

사라져 가는 우리말, 우리 전통과 관습들, 역사 등 많은 것들이 담겨 있고 소설 속 인물들이 전국을 누비는 과정에서 그 지역에 대한 것들, 아주 다양한 모습을 책 전체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 땅을 직접 발로 디디면서 걸어보고 싶었고, 소설 속에서 수시로 차려 나오는 밥상에서 식욕을 느껴 그러한 밥을 먹어보고 싶었고, 과객질을 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절에서 주로 묵어가는 모습을 보며 절에서 숙박을 해보고 싶어 책을 읽었을 당시에 해남 미황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해보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조선 팔도 구석구석을 그렇게 걸어보고 싶었다.

현대에는 여행지까지의 여정은 생략되고 고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여행 과정은 안락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해 왔다. 그러면서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도 생략되었을 것이다.

작년에 부산에 갔을 때는 이틀 동안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겉핥기식으로 부산의 대략을 보았지만, 이번에는 구석구석을 찬찬히 걸어보았다.

'감천 문화 마을'에 갔을 때는 패키지로 온 외국인 팀들이 정말 많았는데, A, B, C코스가 있었고, A코스에 바글바글 많았던 사람들은 B, C코스로 갈수록 확연히 줄었다.

B, C 코스로 가면서 그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문화 마을로 조성되어 보이기 좋게 꾸며진 그곳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아닐까.... 그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고, 그 사람들이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일 텐데... 그런 분들을 더 자세히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할머니들이 "여기 오래 사셨어요?"하고 여쭈어보니 "피난 때부터 살았다"라고 하는 말에 그 자리에 머물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꼬치꼬치 묻는 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예의 바름'의 잣대를 급히 또 나 자신에게 들이대어 공손하게 인사하고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갈 길을 급히 가야 하는 여행은 그렇게 찬찬히 그곳의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며 머무를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진에서 보인 그 모습을 실제로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는 의미밖에 남아 있지 않은 여행은 여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은 생략된 채 시각적 만족감밖에 제공하지 않는 것 아닐까.

미로 길 구석구석에 발견되는 아직 꾸며지지 않아 폐허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는 건물들이, 그 공간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그대로 전달해 주는 듯했다.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새로운 것, 낯선 것과의 만남일 것이고, 그로 인해 나의 세계가 점차 넓어지고 확장되는 것일 거다. 빠른 속도로 이동해야 하는 여행은 그러한 만남까지 인스턴트식일 테니 "모든 여행은 정확히 그 속도만큼 더 따분해진다"는 구절에 여행 경험을 이제 막 마치고 온 지금 정확히 더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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