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이세라 Dec 30. 2023

엄마정체성 15년... 그 후...

< 5 >

생의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쳐서 이십 대 중후반부터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아이도 당연히 낳지 않을 생각이었다. 요즘은 비혼이 대세이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흔치 않은 결심이었다.

막내딸이 결혼하면 고생할까 봐 집에서도 내 결심을 존중해 주었고, 사실 '결혼'이란 것이 너무 거대해 보여 그 제도에 들어갈 자신도 없고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심에는 사실 '진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기는 했는데 그런 사람은 아마도 절대 없을 거라고 확신했으니... '독신주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확고한 마음이었어서, 결혼 적령기가 지나가도 전혀 조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진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기와 우연에 의해, 상황에 휩쓸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뒤늦게 편입되게 되었다.

아이가 생겼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을 생각이었던 나는, 나이를 더 먹으면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협박? 에 굴복하여 결국은 아이까지도 낳게 되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세상 최고로 게을렀던 나는 도저히 육아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육아'란 어렵고 힘든 거라는 인식만 있었기에, 나에게는 오직 '피하고 싶은 일'일뿐이었다. '모성'이란 감정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만 여겨졌었다. 그 감정의 세계에 편입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다른 생명이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나 자신이 이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었을 거다. 

열 달 동안... 이전과 다른 생명의 기운이 신비하게 나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뚜렷이 인식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공명을 몸 전체로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느낌은... 영혼으로 또 다른 생명과 교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었고, 나에게 온 작은 생명에게 강하게 이끌렸다.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 처음 아기와 만나게 되었을 때, 아기는 나를 알아보는 것처럼 빤히 쳐다보았다. 


다음 회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엄마 정체성 15년... 그 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