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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Jan 03. 2024

엄마 정체성 15년... 그 후...

< 8 >

독서 모임을 하면서 낭독으로, 글쓰기로, 수화로, 스피치로, 책놀이 봉사, 독서 모임 리더와 진행자로, 영어책 읽기 모임과 인문학 탐방으로... 회원들의 활동 영역이 확장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활동들은, 육아를 통해서 이미 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베이비 위스퍼> 책의 자장가를 들으며, 노래를 불렀고, 그림책과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낭독'을,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영어 공부'까지도 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해 입으로 소리 내어 영어를 읽어야 했으니 평생 눈으로만 읽어왔거나 사실 그렇게 많은 영어 텍스트들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었던 나는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며 많은 텍스트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발음 훈련도 많이 되었을 거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이와 함께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옥스포드 리딩 트리 (ORT)'였는데,  아이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시기로 타임 슬립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로 읽는 역사에 흥미가 생겼고, 고양시 원어민 수업을 수강하던 중이라, 마침 그때 '영어로 하는 역사 스터디'를 하자는 지인의 제안에 솔깃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결국, 처음 목적이었던 '영어'는 빠지고 '역사'만 남아 3년 동안 하게 되었지만 그때 시작했던 '역사 스터디'는 지금 독서모임들을 하게 된 시초와 발단이 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게 분명한 또 다른 세상으로의 확장이었다.


역사 스터디를 함께 하자고 제안해 주었던 지인은 당시 휴직 중이었던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었는데,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있는 키즈 카페에서 만나 알게 되었던 아들 둘의 엄마였다. 

그러고 보면 아이를 통해 나를 다른 세계로 끌어주는 인연까지도  만날 수 있었던 거다.

사실 스터디를 하자는 제안에 '역사' 보다는 '영어'에 혹했었다. 영어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에 마침 그 지인과 마주쳤기에, '영어 역사 스터디'를 함께 할 멤버로 그분도 나를 생각해 주게 되었던 거다.

그런데 시작부터 원래 취지의 '영어'가 빠지고 '역사 스터디'만 남게 되면서 고민이 되었다.

'역사'는 싫어하는데... '역사'는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아 깊이 알고 싶지도 않은데... ORT와 같은 영어 역사를 상상했기에 스터디에 잠시 혹했던 거였는데... 그리고 '스터디'라고 하니... 사실 좀 부담스럽기도 한데....

여러 가지 핑곗거리가 생각나면서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지금으로선 너무나 고맙게도... 보통은 회의적인 반응의 상대에게 더는 강요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을 텐데... 그 지인은 몇 번이나 나를 설득해 주었던 거다. 한 고집하는 나에게... 하지 말아야 할 핑계를 지지 않고 잔뜩 말해 대는 나에게...

말발에 져서 일단 하겠다고는 했으니 처음 모임에만 참석해 보고 눈치를 봐서 살짝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네 명이서 시작된 스터디 모임에서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참석했을 것 같은 회원 한 명은 첫 모임 이후로 나오지 않아 세 명이 남게 되었다.  세 명 중 한 명은 지금까지 말한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중학교 역사선생님이었는데 역시 휴직 중인 동안에 복직을 준비하며 스터디를 하고자 지인과 마음이 맞았던 분이었다.

그리고 적당히 빠져나오려던 나는 첫 책 <중세의 사람들>에서 저자 아일린 파워와 토인비와의 여행과 로맨스가 언급된 해설에 호기심으로 처음 낚였고, 책에 나온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는 바람에 도서관에서 그 책까지 빌려보는 독서로 이어지게 되었다. 다음 책인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는 '대장정' 편을 읽으며 이름만 인식되어 있었을 뿐이었던 마오쩌뚱에게 처음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관심은 나중에 <중국의 붉은 별>을 읽으며, 마오쩌뚱과 직접 만나 그 경험을 적었던 저자 에드거 스노의 글을 통해 마오쩌뚱이라는 인물과도 좀 더 가깝게 만나보게 되는 경험으로도 이어졌다. 에드가 스노의 부인 님 웨일즈가 김산(장지락)을 만나 쓴 책 <아리랑>까지 '역사 스터디'와 별도로, 독서는 흥미진진하게 이어져 나갔다. 세계 3대 르포에는 <중국의 붉은 별>, <세계를 뒤흔든 열흘>, <카탈로니아 찬가>가 있다고 하는데,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읽으며 러시아 혁명의 현장에 다녀오기도 하고, 후에 독서모임을 통해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며 스페인 내전을 겪은 조지오웰에게서도 직접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역사 속 중요한 사건들을 직접 겪고, 역사 속 인물들과 직접 만나고, 그 이야기를 자신의 말로 직접 전해주는 가까운 지인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던 거다.


그렇게 여러 인물과 사건들을 알아가면서 내가 갇혀있던 좁았던 인식의 세계는 점점 확장되고 넓어졌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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