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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Jan 05. 2024

도서관 수업, 독서 모임 회고록

< 3 >

"우리 곁을 지나 흘러가거나 감수해야만 하거나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서 잃어버리고 놓쳤다고 생각되는 시간, 그 시간이 지나가서 슬픈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픈, 그런 시간에 관한 게 아니었다. 나는 한 달이란 시간을 충만한 것으로 직접 경험한 것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러므로 내가 하려던 질문은 한 달의 길이가 아니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였다. 한 달이 완전히 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과연 언제인가?

내가 한 달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데 1년이 걸렸다고 말한다면 이는 잘못된 말이다. 사실은 내가 한 달의 길이라는 혼란스러운 질문을 하면서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는 데 1년이 걸렸다고 해야 옳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 pp396~397/파스칼 메르시어/들녘)


다시 연주를 하기까지 15년과, 여행 글쓰기 강의를 들은 이후 3년의 시간을 비교해 본다.

15년 만에 시간 이동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가서 15년 전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왜 15년의 세월을 텅 빈 시간처럼 느꼈던 걸까? 


그런데 여행 글쓰기 강사님을 3년 만에 만났을 때 3년의 시간은 너무나 꽉 채워져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겪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인식의 차이는 무엇 때문에 생기는 걸까?

15년은 무척이나 짧게 느껴지고 3년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15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것은 음악이고 악기였다면... 

3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것은 그 이후 수강했던 도서관 수업들과, 책과 글이었기 때문일까?


15년의 시간 동안 음악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으로 이어진 15년은 텅 빈 것처럼 느껴졌던 거였을까?


15년 동안 수없이 많은 음악 활동을 해왔다면, 내 악기 실력도 15년 전의 실력 그대로가 아닐 텐데, 15년 만에 연습에 나가며  15년 전의 실력을 그나마 잃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기 때문일까?


반면 3년 전의 나는 조심스럽게 글쓰기를 시작해 보려는 입장이었다가, 3년 사이 수많은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하며 수많은 책 이야기를 나누고, 글쓰기를 겪어왔기 때문에 3년 만에 강사님을 다시 만나기까지의 시간이 벅차게 느껴진 걸까?


15 년 만에 연주를 했던 경험은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도서관 첫 수업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과거로 이동한 느낌이 아니라 거대한 질량을 가진 어떤 것을 넘어선 것 같은 느낌이다. 

무슨 차이일까?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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