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이세라 Jan 13. 2024

새해

정확히 1년 전,  1월에 무엇을 했는지 떠올려보면, 기억은 순차적으로 사계절을 거슬러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퀀텀점프하듯이 순간 이동해서 머릿속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그때의 영상을 가지고 오게 된다.

매일 쓰기 30일 과정을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닫혀있던 블로그를 열었고, 그 당시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떠올리며 블로그에 첫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 후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내가 쉽게 되고 보니 별거 아닌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매일 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별거 아닌 건 아니었을 거고 여전히 시도하지 못할 도전이었을 거다.

어쨌든 글을 쓰며 새해를 시작한다는 건 작년에도 좋은 일이었다 싶은데, 올해에도 조용히 새해를 시작하며 글을 쓰려고 하고 있으니 좋은 일이겠지 싶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생기려고 하고...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은 자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중이지만... 그러고 보면 여전히 글 쓰고 앉아 있는 일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작년에 정신없이 세상 밖으로 조금씩 활동 영역을 넓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였을 거다. 그래도 지쳤던 것 같은 마음을 좀 쉬고 싶었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작가는 상하이에 집필 여행을 가려다가, 서류 문제로 돌아오게 되어 여행을 간 것처럼 아예 집에서 한 달간 틀어박혀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일만큼 정신이 광활하게 여행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읽는 것도 그러하겠지만, 쓰는 일은... 상상 속에서 더욱 나를 그 세계에 직접 가져다 놓고 써야만 했을 테니까...

그래서 집필을 마치고 바람을 쐬러 밖에 나왔을 때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세상이 낯설게 보였다고 한다.

어느 시인님은 이번 겨울에 땅끝 마을에 가서 책을 4권 쓸 계획이라고 하셨다.

아는 분이 이번 겨울에 계획 중이라고 하는 해외여행에 대해서는 전혀 감흥이 없고 부러운 생각조차도 없는데 김영하의 방구석 여행이 더 좋아 보이는 건...  꼼짝 하지 않고 게으르게 마냥 있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핑계를 대고 싶어서인 걸까.


어쨌든 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  이 끝없는 욕구... 방구석 여행에 대한...

나에게는 너무 좋은 숙소(아이 숙소)가 있는데...  체크 아웃 하고 다른 지역에 숙소를 뒤져가며 방을 옮기고 싶지도 않다. 정착하고 싶다. 그냥 이곳에서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 여행을 하고 싶다.

왜 꼭 여행을 가야 그럴듯한 조식을 생각하고, 주변 산책이라도 나가려고 하는지...  '아이 숙소'(우리 집)에서도 얼마든지 탐색할 수 있는 산책 코스가 있고 '조식'으로 기분내고 싶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요 며칠 눈까지 내려, 세상이 낯설어지는 경험은 멀리 스키장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이웃이 보내 준 동네 풍경을 보면서도 난 꼼짝도 하지 않고 결국 나가지 않았다. 왜 여행을 가야 좋은 풍경에 집착하고 하나라도 더 보고 즐기고 눈에 담으려고 하는 걸까...  이곳에서 담을 수 있는 풍경에는 그렇게도 인색했으면서...

어쨌든... 나도 그분들처럼 방구석에서 '집필 여행'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집필 여행이 아니라 그냥 '게으름'인 것 같아 밖으로 또 탐색이라도 나가야 하는 걸까 엉덩이가 들썩하려고 한다.


'양철북'에 푹 빠져 사실 엄청난 여행을 하며 새해 첫날들을 보내긴 했다.

오스카가 두드리는 북소리를 따라 내 정신도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그 세계에 닿았으니까...

오랜만에 독서의 즐거움에 푹 빠져서...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내용이지만, 그러한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일 자체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 책과, 이 작가와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 마치 예정된 운명처럼... 독일 작가들과의 만남은 내 인생 전체를 통해 정해진 순서에 맞춰서 순차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소녀시절 루이제 린저에서 시작해서, 헤르만 헤세시절을 거쳐서 토마스 만... 이제는 귄터 그라스까지 다다른 거다.


루이제 린저의 첫 작품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가 파문을 일으켰던 소녀시절, 하지만 그러한 이끌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생의 한가운데>나 <다니엘라>까지는 다다를 수 없었고, 헤세도 아직은 <유리알 유희>에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다. 몇 번이나 책을 펼쳤음에도 끝까지 가지 못한 건... 나에게 그 책과 만나기에 더 적당한 때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내 첫사랑은 '슈베르트'였고, 중학교 때 집에 있던 쇼펜하우어에 꽂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수준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상태로 일찍이 비관론에만 빠졌었다.

특히 독일 음악, 독일 작가들에게 이끌려왔던 게 '전생'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지 의심될 정도였는데... 양철북의 배경인 '단치히'에서 쇼펜하우어가 살았었다고 하고, 마침 이번주 금요일 독서 모임 책이 마침 또 쇼펜하우어인 것을 보면... 과연 이 만남의 기회가 하필 이 시간에 다가오는 것이 과연 우연인지, 동시성인지,  운명인지 모르겠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토마스'가 죽기 얼마 전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심취했던 장면이었다.

그 얼마 후에 그 책을 빌렸지만 아직 나에게는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다시 빌려올 예정이지만... 이제는 적당한 때가 되었을지는 다시 만나 봐야 알 수 있겠지...  어쨌든 <내면소통>을 읽는 동안에도 계속 이 책이 특히 마음에 걸려오고 있었다.

올해의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있었지만... 생각났다. 어제부터 <내면소통>을 다시 힘차게 읽기 시작해서 6장까지 단상 쓰기까지 훌륭하게 마쳤으니, 미뤄두었던 책들을 올해에는 꼭 읽어야겠다. 귄터 그라스를 조금 더 읽어볼 생각이고 쇼펜하우어도, 헤세의 <유리알 유희>도... 이제는 좀 읽어야겠다.


그래도 작년에 했던 가장 뿌듯한 기억 하나는...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를 마쳤다는 점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나서 어느 분이 도스토예프스키 집중 읽기를 하자고 제안해 주셔서... 그때는 6개월도 길게 잡았던 느낌이었는데 1년에 걸쳐서 결국은 작년 마지막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까지 마치면서 2023년을 마감했다.  그래서 작년 초 매일 쓰기에 적었던 글에 <가난한 사람들>, <분신>이 언급되고, <백야>, <스테판치코보 사람들>, <노름꾼>을 속독하고, 블로그에 <죄와 벌>을 조금 끄적여보다가... <백치>에서 한참 방황하고 헤매고(여름이어서 더 그랬던 듯),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달려왔던 거다.

마침 <백치> 독서 모임을 하는 전날, 나는 처음으로 '탈선'한 사람처럼 15년 동안 멀리했던 '술'을 새벽까지 마셨었고... 책에 더 집중하지 못했었다. 독서 모임 당일에 주요 멤버 몇 분이 못 오게 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아예 모임을 쉬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의하고 당일에 갑자기 모임을 쉬게 되었던 날이 그날이었다. 오랜만에 전날의 과음과 숙취로 괴로웠던 날... 결국 책은 완독 하지 못했었던 날...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없는 말투처럼.... 아무튼 힘들었던 <백치>까지 마저 읽고, <악령>에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까지... 정신없이 읽은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며... 내 글은 이 정도만큼 장황하고 동어반복, 중언부언이고, 지질한 것도 아니라며 위로와 용기를 많이 받았었다고 한다면 (책에 담긴 사상들은 논외로 하고 문장만 가지고 따져 본다면)... 귄터 그라스를 읽으면서는, 감탄했던 만큼 역시 나는 안 되겠다고 좌절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나 보다. 감히 천재들과 비교하며 좌절하는 버릇...  

러시아에도 한참을 머물렀으니, 러시아에도 특별한 그리움과 애정을 느낄 법도 한데... 조금 더 내 영혼 밑바닥을 자극시키는 건 독일 쪽인 것 같다.

평생에 걸쳐가며 계속 나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것 같은 이끌림... 내가 이끌려왔던 것들을 돌이켜 보면...


시간은 연속적으로 흐르고 있겠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인식하는 시간은 순차적인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으니,  1년 전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계절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할 필요는 없었을 거다.  겨울인 지금 나는 겨울이었던 지난 1월의 기억을 곧바로 가져와 보지만... 사실 2023년의 1월과 2024년의 1월 사이에 열두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고, 사계절이 있었다.

현실 인식에도 얼마든지 오류가 생기지만, 기억은 특히, 시간 인식에 있어서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겠다.

그러니까 최근 3년에 대한 기억과, 다시 연주를 하고 15년 만에 만나게 된 사람들은... 마치 기억 속에 죽어 있다가 갑자기 다시 살아나 부활한 것처럼 다가왔으니...  나에게 그 시간 인식에 있어서는, 인식의 오류가 생기기 충분한 경험이었을 거다.


양철북을 읽는 동안, 작가의 이야기 서술 방식에 따라, 특히 북을 치면서 오스카가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들까지도 세세하게 묘사 가능했듯이, 그 북소리에 따라 읽는 독자의 시간도 순식간에 순간 이동 되어, 정신은 이미 그곳에 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두 발로 직접 가는 여행이라 하더라도, 그 시간, 그 장소에 가는 경험은 이런 정신적 여행의 방법 밖에 없을 테니... 어떤 여행이 더 폭넓은 여행의 경험일까...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여행? 정신의 광활한 여정?

그런데 직접 몸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더라도, 먹방 여행, 경치 감상, 유희 등에는 관심이 없으니...  박물관이나 기념관에라도 들러 과거의 흔적들을 만나는 경험이 없다면 허탈할 뿐이었다. 여행을 가서도 정신의 여행을 원한다면... 굳이 몸을 억지로 이동시켜야 할 일인지... 그 장소에 가서 직접 더 가까이 만나는 경험들은 좋긴 했지만 어쨌든, 여행에까지 책을 들고 가서 읽어야 즐겁다면... 굳이 이 무거운 몸을 움직여 여행 가방에 책을 무겁게 챙기고, 여행지로 몸을 옮겨서 까지도 책을 뒤적이고 있어야만 할 일인가 싶었다. 그 장소와 더 만나야 할 것 같아서 막상 여행에 가서는 지도를 보느라 책을 안 보게 되기는 했지만, 여행지에 대한 환상 중에서도 가장 마음 끌렸던 환상은, 바닷가에서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든... 손에는 책이 들려있는 모습이었으니까....


아무튼 방구석에 앉아 책이라는...  더 넓은 세계로 시선을 넓히게 해주는 창을 통해서라도... 실제의 몸을 이동시킨 건 아니더라도 정신이 그런 여행을 하고 난 후라면... 역시, 현실에서 겪었던 시시콜콜한 갈등들은 조금 더 거리 두기가 가능해지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새해 방구석에서 떠났던 첫 여행은 어떤 여행보다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 2024년에도 좀 더 깊이 여행을 떠나 보기로 하자. 책이든, 삶이든...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다가가 보도록 하자. 어차피 지구에 정착해서 사는 이 삶 자체가 여행일 텐데... 이미 멀리 여행을 온 것인데... 이것 외에 다른 여행을 굳이 더 꿈꿀 필요가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도서관 수업, 독서 모임 회고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