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의 감옥살이를 다른 한 가지의 감옥살이에 빗대어 대신 표현해 보는 것은, 어느 것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빗대어 표현해 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합당한 것이다.”
카뮈의 <페스트> 첫 페이지에 나오는 다니엘 디포의 문장이다.
카뮈가 실제로 겪었던 상황은 '전쟁'이었고, 책을 쓸 때 빗대어 표현한 상황은 '페스트'였다.
전염병으로 봉쇄된 오랑시의 상황은 카뮈가 전쟁 중에 실제로 겪었던 상황과 비슷했다.
<페스트>를 읽으면서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경험을 했는데, 봉쇄된 도시에서 탈출하려던 랑베르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에 남기로 결정하는 장면에서였다. 랑베르는 리유, 타루 등의 사람들과 '연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 드렸나요, 선생님?"
대답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가난입니다."
타루가 리유에게 물었을 때 리유의 대답은 책을 읽고 난 이후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랑베르가 남기로 결정한 행위... 바로 그것이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이야기한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었을 것이다.
카뮈는 감옥과 같은 '부조리'를 평생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의 운명처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바라보지만, 다시 돌이 굴러 떨어지기 전 시지프가 잠시 멈추고 숨을 쉬는 '찰나의 순간'에 의미를 둔다.
다시 돌을 굴리고 과업을 수행할 것을 결정하는 순간... '부조리'의 상황이지만 그 상황 속에서 나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은 감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감옥들이 '감옥'임을 인지하기조차도 어렵다.
'감옥'임을 인지하고 난 후, 나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감옥'에서 잠시 벗어났다고 생각하더라도, 페스트균은 죽거나 소멸하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마지막의 암시처럼... 감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카뮈는 그러한 상황에서의 우리의 선택과 태도에 주목한다.
리유는 관념을 위해 죽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으며,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라고 말한다.
'어떤 거대한 이상을 위하여'가 아니라... '사랑을 위하여'에 가치를 둔다면...
인간을 그렇게 무참하게 죽이는 '전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사랑은 내 집단만을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애'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이겠지만...
어쨌든... 그리하여 어려움에 처한 인간들이 함께 '연대할 것'
'연대'하여 다른 집단에게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감옥과 같은 '부조리'의 상황에 대해 '반항'하는 것.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을 '페스트'라는 하나의 감옥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이 <페스트> 였다고 생각된다.
'감옥'이라는 이번 글쓰기 주제를 보는 순간부터 <페스트>의 첫 문장이 생각나서 이번 주제는 카뮈의 글에 빗대어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