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직명퇴후 말년휴가 포함 약 4개월이 흘렀네요. 매년 특색있는 다른 인생을 살자는 목표로, 1년차 올해는 '다양한 직업 체험의 해'로 정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고 있어요.
지금껏 해온 일들을 보면,
- 에어비앤비 청소(2개월, 언제가 전망 좋은 주택에서 직접 호스트로 운영해볼 예정으로 지금 시험중)
- 택배 상하차(1개월, 체력 소진의 끝판왕이라는데 얼마나 힘든지 해본일)
- 주식전업체험, 오피스텔 출퇴근(주식 전업자들의 삶이 궁금하여 실현해봄)
- 택배 분류도우미(1개월, 이제 그만두고 다음 일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은 노가다, 농어촌 일손 돕기, 단순 식당 써빙 등등이 있어요.
최근 다음 일자리로 당구장 알바를 예정했습니다. 당구장 알바는 몇 번 지원했으나 나이 때문인지 번번히 탈락하더군요 ㅠㅠ
그러던 중 최근에 당구장 알바를 한단계 넘어서, 위탁운영을 제안받고 심사숙고 하던 중 차라리 제가 일찍 그냥 당구장 사장이 되기로 했어요! 창업은 내년에나 생각했는데, 사업자를 내어서 4대 보험도 해결할 겸 예정없이 일찍 시작하게 되었네요. 다만 큰 리스크 없이 소액으로 하니 부담은 없어요.(보증금 포함 5천만원이내) 언젠가 꼭 해야할 버킷리스크 중 하나인 '당구장 사장'을 잠시 경험해보려 합니다.(현직에 있을때 맘스터치 운영후 1여년 만에 다시 영업주가 됩니다.)
40대 공직 명퇴후 3개월쯤 지나보니, 제가 3년 계획했던 일들의 명암이 조금씩 가려집니다. 나올 때 저를 말리던 지인들의 주요 레파토리인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느정도 맞는 말 같아요. 직장에서 야간근무를 병행했기에 평균 500만원 정도 벌었는데, 밖에 나오면 이정도 벌기는 매우 힘들어요. 그냥 최저시급을 적용한 알바라면 월급이 2백만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억만금을 줘도 다시 예전직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돈은 좀 부족해도 밖이 훨씬 더 좋아요. 내 계획대로 내가 주도해나가는 삶의 가치를 절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예전 공직에 있을때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과 안정된 직장이라는 명분 때문에 사명감도 없이 제 분신처럼 껍데기만 직장을 오갔던 그 현실이 오히려 지옥에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밖에 나와서 은퇴생활을 하니 '하루하루 행복하다' 이런 기분보다는 더 이상 다닐 명분이 없는 곳에서 '드디어 나왔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와닿습니다. 돈은 먹고 살만큼만 있으면되요.
10억이 있으나, 20억이 있으나, 30억이 있으나, 그냥 숫자에 불과할 뿐 행복의 잣대는 아닙니다. 10억이 채 안되는 자산이지만, 자산을 늘릴 계획은 단 한순간도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천석꾼은 천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가지 걱정이라고 하죠. 그 걱정보다 무한한 자유속에서 나와 가족이 어찌하면 재밌고, 행복할까만 생각할뿐입니다.
내가 살집이 있고, 부족하지만 현금흐름이 있어 가족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고, 곳간에 비상시 사용할 예비자금이 약간 있는데, 무엇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은퇴 전 가장 걱정이었던 경제적인 부분은 큰 문제없이 흘러가는데, 다만 은퇴 3개월차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다면 좀 더 디테일하게 할 일들을 준비해서 나올걸 하는 후회는 있어요. 어차피 계획이라는건 틀어질수 밖에 없는걸 알지만, 나오기 전에 디테일하게 계획을 세웠다면, 당황하지 않고, 다음 패를 꺼내기 더욱 쉬웠을텐데 하는 아쉬움이죠.
저는 나름 계획을 많이 세웠는데도 이렇거든요. 더 철저히 세워야합니다. 인생은 실전이예요.ㅋ
혹시 파이어족을 계획하고 있다면 디테일하게 은퇴후 계획을 세우시라고 조언드릴것 같아요. 그냥 막연하게 은퇴후 등산다니겠다. 도서관 투어하겠다. 여행다니겠다. 이런건 아무 계획도 아니예요.
직장생활 할때야 애들 따라 간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은 도스트예프스키 고전이니, 미국 역사니 하는 이런류들이 재미있겠지만, 은퇴후 시간 많아지면 금방 싫증나요. 등산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은퇴전 이미 많이 체험해보고 이런계획들은 아예 배재했어요..
그리고, 와이프와 같이 취미하면서 놀겠다는 생각 역시 제 기준에선 틀어질 계획일 가능성이 높아요. 은퇴후 너무 자주 같이 부대끼다 보니, 투덜이 스머프같은 아내의 잔소리를 가까이서 들어야 해요ㅋㅋㅋ 그렇지만 너무나 이해가 되긴합니다.
수십년간 경제 일선에 발을 담궜던 사람이 거기서 두발을 다 빼버리면 나도 모르게 공허함이란게 찾아올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문득 외로움이라 불청객이 방문합니다. 가장 많이 느낄때가 알바하고 밤에 귀가할때 직장인들이 술집에서 단체회식할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 가장 기분이 묘합니다. 내가 저들처럼 20년을 살아왔는데, 지금은 나홀로 외딴 섬 생활을 하는것 같은 소외감입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거칠고 외로운 이 길은 제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는 없습니다.
일생에 첨 해보는 조기은퇴라 모든것이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감정들 역시 잠시 스쳤다 지나갈것이라 생각하고, 찬란한 파이어족 생활을 위해 다시 계획대로 나가리라 다짐합니다.
손에 쥐고 있는 여러가지 패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어떤 패를 선택할까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이 넓은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고, 모험적인 일이 많을까요? 설레임을 가지고 40대의 인생모험을 떠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