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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무원파이어족 Jun 27. 2023

조기퇴직 1년차, 가혹했던 신고식!

공무원 조기퇴직후 파이어족이 된지 1년 만에 맞은 첫 시련과 극복기

직업상실의 의미들...



자의든 타의든 평생 몸담았던 직업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는 안정적은 월급의 상실이다. 이 마약같은 월급때문에 대부분은 힘들어도 퇴직하지 못한다.

두번째는 명함의 상실이다. 남자에게 직업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인데, 이것이 사라진다.


공무원 조기퇴직을 결정하면서 위의 두가지는 충분히 예상하며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한가지 간과한게 있었다. 

공직에서 나오게 되면, 나의 금융 신용도가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그간 대출 등에서 항상 최우량고객으로 누렸던 지위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은퇴카페 등에서 몇번 들어서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역시 글로써 배운 이론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인지, 금융신용도의 중요성을 무시했던 댓가로 사회의 호된 채찍을 정통으로 얻어 맞았다.


 사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카드나 대출 등의 연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지난 10년간 가진 자산에 비해 꽤나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를 해왔고, 그때 활용했던 레버리지로 은행에 많은 이자비용을 지불했다. 금융기관의 사상최대 실적에 내 지분도 조금은 있을것이라 생각해왔다.

 

퇴직후에도 내 카카오뱅크 신용점수는 상위 20프로 정도로 퇴직전 대비 하락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게 나의 금융신용도와 동일시 되는 것인줄 알고 착각했던게 큰 실수였다. 


조기퇴직후 파이어족이 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겪은 호된 신고식을 한번 적어보고자 한다.



공무원 파이어족의 첫번째 위기!



7,8년 전쯤 가족 중 한명이 나에게 1억을 맡긴 적이 있었다. 반대급부로 나는 은행이자의 2.5배 정도 되는 돈을 이자명목으로 매월 지급하였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서로간 윈윈에 의한 계약이었다.


이후 명예퇴직하면서 받았던 명퇴금과 수중에 있던 돈을 합쳐 얼마간의 여유가 있어 변제할려고 했었다. 그러나 더 연장하자는 요청을 받아 수락했고, 자의반타의반 이 채무관계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가족이 뜻하지 않은 송사에 휘말리다가 결국 패소하게 되면서, 급히 1억이란 거금의 변제를 요구하는 상황이 왔다. 불과 몇 달전까지 해도 내가 바란던 바였건만, 그 이후 수중에 있던 돈으로 모친 주택구매하는데 일부 지원해주고, 나머지 돈은 당시 금리상승에 따라 상가 대출이자가 부담스러워 변제하는데 대부분 사용한 후였다. 수중엔 그껏해야 2천만원 정도 밖에 없었다.


한두달 안에 7,8천만원을 마련해야 상황이 왔지만 첨에는 사실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살고 있던 주택이 kb시세에 비해 대출은 1억도 되지 않아서, 그간 알고 있던 상식으로 생활비 대출로 1억은 충분히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기나 여건이 좋지 않았다. 대출 당시가 2022년 가을경이었는데 금리가 최고조였고, 나라에선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대출규제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런 여러 악조건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내 직업이 무직이라는 것이었다.


 집사람 명의로 당구장을 하고 있던 시기여서 내 명함은 어엿하게 당구장 사장이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것이고, 서류상은 무직! 은행 입장에선 땡전 한푼 빌려주기 싫다는 백수인 것이다.


주거래 은행에 대출상담하러 갔을때 무직이란 소리에 대출직원이 고개를 살짝 갸우뚱 하는게 불안한 징조였고, 결국 대출이 힘들수 있다고 얘기했다. 십수년간 최우량고객이었는데, 씁쓸했다. 

대출이 거의없는 주택을 가지고 있음에도, 월세 짱짱하게 나오는 상가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직업이 무직이라는 이유로 대출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하고, 가능하다고 해도 아주소액으로 최고 금리가 적용될거라 했다. 


결과적으로 8천만원 대출신청했으나 가능액은 2천만원이고, 금리도 10프로 이상이라고 했다. 그것도 주거래은행의 자회사에서 운영하는 캐피탈에서 겨우 알아본 결과란다. 이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쉽지않았다.


 공직에 있을때는 항상 최저 금리로 신용대출이다 퇴직금 담보대출이다 해서 2억 정도는 재직증명서만 첨부하면 수일 내로 쉽게 대출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신용불량자급으로 급전직하했다. 

급한대로 인터넷  조회를 통해서 무슨무슨 캐피탈이니 하는 2금융권 대출도 알아봤지만, 심지어 여기서까지 백수라고 찬밥 취급받는 굴욕을 당해야했다.


 이도저도 안되는 상황에서 차라리 가지고 있는 자산을 헐값에라도 팔아 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보유하고 있던 차를 팔려고 했다. 퇴직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호기롭게 외제차를 샀었는데, 1년 남짓만에 처자식에게 구차한 동의를 구하고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온것이다. 헤이딜러 등에 총 3번의 방문 견적을 받았고, 각종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도 매물 등록을 했다.


 이 역시 결과가 어이상실할 정도였다. 4천 넘게 주고 샀는데, 1년 6개월만에 2천 몇백을 준단다. 속으로 도둑놈들이라고 욕했다. 당시 경기침체로 중고차 값이 똥값이었고, 경유값이 휘발류를 초월하는 역대급 기현상에 경유차인 내 차 역시 똥값 취급을 받았다. 이 또한 결정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 개인연금으로 들었던 IRP계좌의 해지를 생각했다. 그간 나는 조기퇴직자는 공적연금을 제외하고, 3층 연금의 하나인 개인연금을 필수로 가져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홍보하고 다녔는데, 뒤에서는 이렇게 해지를 계획하고 있는 사실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해지하면 3천만원정도 마련되는데, 대신에 그간 연말정산 혜택받은 금액에 더해서 해지 위약금이 총 20프로를 넘는다고 했다. 역시 너무 날강도 같고, 억울해서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 다음 운영하고 있던 당구장을 급매물로 내놓았다. 이어서 은퇴의 든든한 현금흐름을 담당했던 상가 또한 수십군대의 부동산을 돌며 매물등록을 했다. 살고 있던 집 역시 매물등록을 했다. 그 어느 것이든 먼저 현금마련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지인에게 돈을 빌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기도 했고, 조기퇴직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돈 빌린다 소리나오면 괜히 조기퇴직해서 사서 고생한다고 두배로 욕먹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진퇴양난이었고, 파이어족 생활에서 첫번째로 겪어보는 위기였다. 돌아보니 내 준비가 부족했다. 현금흐름 마련한답시고, 내 자산의 7-80프로 이상이나 되는 과도한 레비리지를 퇴직후에도 여전히 활용하고 있었다. 자산 전체가 전부 환급성이 없는 부동산 등에 편중되어 있었던 것도 명확한 패착이었다.


이 위기는 내 스스로 자초한것이고, 이번 유동성에서 비롯한 위기를 통해 자산 분배를 개선해야 된다고 뼈져리게 느꼈다.


그러던 중 다행스럽게 일은 꽤 손쉽게 풀렸다.


 보유 주택을 매물로 내 놓음과 동시에 주택침체기에 당연히 매도가 쉽진 않을것 같아서 전세도 같이 내 놓았는데, 꽤 괜찮은 가격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대신 나는 살던 곳 인근의 신축아파트에 월세 100만원으로 난생 처음 고가의 월세살이를 시작했다. 


 나처럼 이렇게 급한 자금을 해결하기 위해 본인 아파트를 급 전세주고 월세 사는 경우는 사실 제법 허다하다.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늘어났을 테고 이런 사람들이 내놓은 전세 매물이 폭증해서 전세가 폭락을 불러왔고, 더불어 매매가 하락까지 부채질하는 악순환의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전세금으로 남은 주택 담보대출 갚고, 가족에게 빌린돈을 변제하고, 수중에 1억 정도가 남았다.


월세 1백만원! 이런 고가 월세 사는 사람은 누굴까 생각했는데, 그게 나같은 사람이겠거니 이해되었다. 



유동성 위기가 남긴 교훈!



임시방편으로 월세로 쫒겨나면서 급한 돈은 다행히 해결했다. 그렇지만, 월세 1백만원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생겼다. 가뜩이나 부족한 현금흐름에도 큰 지장이고, 여러모로 생각치 못한 위기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이 위기를 다시 반등의 기회로 만들어야 했다.

 

 잠시 은퇴생활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잘못된 자산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선 상가를 팔수 밖에 없었다. 없는 자산에 풀레버리지로 상가를 사서 현금흐름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이었다. 다행히 상가를 손해없이 매도했고, 이렇게 마련된 현금으로 다시 상가월세를 대신할 현금흐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결국엔 수익형 부동산과 더불어 현금흐름의 양대축이면서 환급성이 좋은 주식배당주로 갈아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배당주 투자와 더불어 주식에는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터였다.


이제부터는 절대적으로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주식투자 방법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가치투자 최고 카페인 가투소의 한 분이 불현듯 떠올랐다. 수천만원의 시드머니로 20년간 배당주 복리효과를 통해 십수억을 만든, 내가 알고 있는 주식계의 현인이자 워렌버핏이다. 생면부지의 이분을 꼭 만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 만이 나를 위기에서 구해줄 구세주라고 여겼다.


 만나서 바짓가랭이라도 잡고 늘어지고, 읍소해서라도 이분의 투자방식을 전수받고 싶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나의 간절한 요청은 만남으로 이어졌고, 이분이 소개해준 또 한명의 투자현인을 통해 투자철학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이분들을 통해 절대적인 투자비기를 얻었다기 보다는 안정적인 고배당을 통해 장기 복리투자 방식으로 주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간 오랜 주식투자에도 불구하고, 주식 투자수익은 항상 변수였는데, 이제 예측가능한 상수라고 얘기할수 있을 만큼 꽤나 든든한 현금흐름으로 자리잡아 나가고 있다.


현금흐름이 수익형부동산에서 주식배당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이와 관련한 주식얘기는 별도의 주제로 상세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이번 유동성위기를 통해 겪은 파이어족 생활의 첫번째 시련은 지나고 나니, 처음 은퇴계획부터 잘못 설계되었었다. 터질 수 밖에 없었던 거품같은 것이어서 차라리 빨리 잘 터진것이었다.


파이어족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자산 리벨런싱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고, 빚은 어떠한 경우에도 멀리하면서, 언제든 현금화 할수 있는 환급성 좋은 자산을 최소 2-3억 정도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게 내가 느낀 결론이다.


자산 리밸런싱(資産rebalancing) :  금융 자산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을 주기로 재무 상태표를 작성하고 투자처를 재조정하는 일.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가능한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실제 수익률이 적당한지를 고려하여 자금 투자를 재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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