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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Mar 27. 2017

1. 프롤로그 : 퇴사를 생각하다 부탄에 갔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불치병 같은 번아웃 증상 때문에 힘들었다. 한번 바닥에 내려가면 며칠에서 몇 주 정도 회사 사람이라면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졌다. 긴 백수 시절 바라 온 ‘아침에 출근하는 삶’이 어느 순간에는 그토록 벗어나고픈 삶이 되었다는 사실이 허무했다. 게다가 이 일이 내가 원했던 일이고, 원했던 직장이었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이 허무와 갈증에는 딱히 치료약도 없을 것 같았다. 누구나 그렇게 적당히 버티다 가는 게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러던 이번 여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름이 오면 다들 한두 달쯤은 쉰다는 이탈리아 얘기를 회사 사람들과 나누며 신세 한탄을 하던 게 엊그제 아니었던가. 그런데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7월 어느 날 내게 한 달의 휴가가 '통보'되었다. 초과 근로에 대한 신생 회사의 원칙적인 휴가규정 때문이었다.


이렇게 우연찮게 주어진 한 달의 휴가, 나는 긴 시간 이 나라를 떠나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다시 출근을 하루 앞둔 밤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 밤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침 8시 서울의 지하철에 다시 적응하고 회사의 답답한 일과를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 부탄의 파로 국제공항. 내가 부탄에 도착했던 날



일상은 그대로 시작되지만, 다행히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조금이나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행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을 적어두려 한다. 그 시간의 느낌과 마음가짐, 상상했던 것들을 잊지 않도록 여행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록할 것이다.


나는 부탄에 다녀왔다. 행복의 나라로 알려진 내 오랜 호기심의 왕국. 부탄에 머무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었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모여있는 사람들의 복잡한 관계에 신경을 소모할 일이 없으니 정신이 맑아졌다. 마음의 속도가 느려지니 시간을 좀 더 구석구석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몇 가지 화두를 잡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부탄의 원색에 가까운 파란 하늘빛을 보며 많이 생각하고 주섬주섬 여러 가지를 적었다.


부족함 없이 먹고 심심할 틈이 없으며 언제든 손 안의 기계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구도(求道)의 결과를 여행기에 담는다. 부탄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채울 것이다. 이 여행기를 읽는 누군가에게 현실을 개조하는 작은 상상력의 씨앗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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