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안과 나는 다오 씨로부터 ‘해피워터’를 몇 잔 받아마시고 다시 마을로 나와 걸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낮술은 익숙하지만 아침술은 인생 처음이었다.
아직 우기가 끝나지 않아 새벽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었다. 쿠안은 다오 씨 집 건너편에 있는 작은 전통 가옥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에서는 한국의 왕골 돗자리처럼 생긴 전통 슬리핑 매트(sleeping mat)를 만드는 노인 부부가 부지런히 작업 중이었다. 기후가 습하고 덥기 때문에 베트남인들은 거실이나 침실에 이런 매트를 깔아 두고 생활한다고 했다.
두 분의 작업에는 자동화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대나무 사초를 가공해 룽타처럼 오색으로 염색한 원재료가 오면, 새벽 다섯 시부터 둘이 나란히 앉아 수작업으로 매트를 만들고 있었다. 거의 50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가 구상한 도안에 맞춰 가느다란 줄기를 한 올씩 끼워 넣으면, 할아버지가 도구로 열을 맞추고 결을 만들어냈다. 가늘게 쪼개진 줄기들이 하나의 무늬로 피어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장인의 작업이었다.
나도 잠깐 끼어서 해봤는데 실수하지 않으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다. 두 분이 천천히 호흡을 맞춰 주는데도 자꾸 어긋나는 결들이 생겼다. (술을 한잔하고 와서였을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어서 3분 만에 포기를 외쳤다.
한 발 물러서 이 작업을 바라보자니 문득 기계 생각이 났다. 기계로 돌리면 생산성이 백 배는 높아질 듯한데, 이렇게 만들어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쿠안에게 물었다. 베트남인들이 흔히 쓰는 생활용품이면 주변에 이걸 만드는 공장이 있을 텐데, 두 분이 만드는 매트가 잘 팔리냐고.
쿠안은 대도시 주변에는 매트를 만드는 공장이 있고 마트에는 공산품이 진열되어 있다고 말했다. 두 분이 만든 매트는 호이안의 인근 마을에서 사간다는 설명이었다. 그러고는 구석에 놓인 공장 생산품 매트를 가져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리저리 당겨서 짜임새와 결, 색상의 선명함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데 두 분이 만든 매트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쿠안은 두 분이 이곳에서 만든 매트들은 ‘아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작업한다고 말했다.
여행지의 색깔
사람들은 여러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고 나 역시 때마다 뜻하는 바가 다르다. 언젠가는 영감을 주는 새로운 문화를 찾아 부탄에 오래 머물다 왔고, 때로는 전형적인 휴식처를 찾아 세상 곳곳의 한가한 마을을 찾기도 했다.
그런 여행의 기억들 속에서 오래 떠오르고 이렇게 글로 기록하고 싶어지는 곳은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곳들이다. 다오 씨의 이야기나, 매트를 오십 년째 만드는 노부부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호이안 투본 강가에 북적대는 관광객들과 그 주변의 낡은 나무 조각배들, 색색으로 밤을 밝히는 연등의 풍경이 좋았다. 하지만 호이안에는 그런 ‘관광코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걸음만 벗어나면 지역민들이 수백 년의 전통을 보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쿠안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그런 장소와 사람들은 내가 베트남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이 바글대고 돈이 돌고 임대료가 오르면 그곳에는 로컬의 맛이 사라진다. 지역민들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프랜차이즈 상점 같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매력을 잃고 쇠락한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서울의 삼청동이다.
언젠가 다시 호이안을 찾는다면 이곳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이미 호이안 중심가는 높은 임대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효율적인 것들만 남겨놓고 나머지 모두를 밀어낸다면, ‘아는 사람에게 팔기 때문에’ 더 성실히 작업하는 노부부의 마음은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와 함께 도시의 매력도, 호이안만의 색깔도 흐릿해질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조금 더 부유해지는 대가로 모두가 비슷한 얼굴을 하게 되는 그런 길로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호이안을 떠났다.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고 그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한 뒤에, 나 같은 외지인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하는 쿠안 같은 청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안과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
베트남 호이안 여행기
① 우리를 만드는 이야기
② 아는 사람에게 주는 것 (끝)
부탄 여행기
<퇴사를 생각하다 부탄에 갔다> (총 1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