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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의 가격 ②

by 재원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불확실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확신감을 주는 상품은 시대를 막론하고 뜨거운 주목을 받습니다. 중세 서양의 면죄부나 연금술, 중국의 불로초, 조선 말기의 족보 같은 것들이 인류가 구상한 확신의 아이템들입니다.


2025년 한국에서 불로초만큼이나 사람들을 미혹하는 상품이 있습니다. 각종 신굿입니다. 제가 2022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무속 사기를 다뤘을 때 추정했던 무속인의 규모는 10만 명가량이었습니다. 지난주 방영된 <추적 60분>에 인용된 자료에서는 최대 30만 명가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작두 타는 사기꾼


무속이 예능화 되고 유튜브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는 불안이나 정신적 취약함을 무속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습니다. 아프면 신병을 의심하고, 일이 안 풀리면 잡귀를 떠올리는 식입니다.


무속인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가짜 신내림과 무당 사기꾼도 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무속 사기를 처벌할 법리가 없어서 사건이 경찰까지 갔다가 튕겨져 나오는 일이 흔합니다.


자식이 자꾸 아픈데 병원 약으로 안 나아서 무당을 찾아가니 → 딸한테 귀신이 왔는데 거부해서 탈이 났다며 얼른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데 딸 무당 만들기 싫으면 엄마라도 받아야 한다고 신내림 굿값 1억을 내라는 — 꼭 자식이나 가족을 걸고넘어지는 이런 스토리를 사기꾼들이 많이 씁니다.


제가 2022년 취재한 지역에서는 이렇게 신내림 받은 엄마가 정신질환이 생겨서 딸과 함께 자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른 언론에서도 비슷한 레퍼토리에 굿값만 떼먹고 나 몰라라 하거나, 굿 효과가 없는 건 “네가 열심히 안 해서”라고 둘러대는 무당들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습니다.



불안과 고통의 웅덩이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이런 무속 사기꾼들은 신을 빙자한 확신을 팝니다. 길가에 버려두어도 아무도 안 주워갈 지푸라기를 구원의 동아줄로 속여서 내리는 셈입니다. 그 줄을 붙잡은 사람들은 돈을 뜯기고 정신 질환을 얻기도 합니다.


진실하게 자신의 문제를 터놓거나 의지할 이웃이 없는 고립된 사람들, 그래서 생면부지의 무속인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에 취약함을


사기꾼들은 정확히 꿰뚫어 봅니다.



지푸라기의 가격


조금만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거대한 불확실함과 불안의 바다에서 갈 길을 알려주는 지혜는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신내림을 받고 오래 민중 문화의 일부로 활동해 온 진정한 무속 사제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악귀 같은 것은 없다”고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무속이 모시는 신은 각자의 선조이며, 그들이 후손이나 타인을 해할 동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 무속이라는 종교의 믿음 체계라는 것입니다.



악한 목적으로 인간에게 빙의하거나 무슨 초능력처럼 다른 존재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 역시 “영화를 많이 본 탓”으로 일축합니다. ‘재회굿’같은 최신 발명품에 이런 무속인들이 혀를 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범람하는 우울과 불안에 잠겨 있다가 알고리즘이 내미는 어느 무당의 콘텐츠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립니다.


그것을 잡으면 커다란 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영상에 사례자로 등장하는 사람은 전문 배우고, 무당이 다 아는 척하는 것 또한 대본으로 짜고 치는 내용입니다. 날것처럼 보여도 제작사가 붙어서 연출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어린이 고시도 비슷한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정신적 질환에 몰아넣으면서, 부모들에겐 달콤한 미래를 약속하고 있으니까요. (과도한 선행학습이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기사1, 기사2)


서울대 안에서, 그리고 많은 영역의 사람들을 취재하고 다니며 느끼기로, 부모의 푸시로 학벌이나 직업을 성취한 어른들은 특유의 무색무취한 느낌이 있습니다. 자연스레 또래 집단이나 직업 집단에서도 별다른 관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자아 또한 사교육으로 빚어낼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정신이나 인성이야 어떻든 돈 잘 버니 됐다고 믿는다면,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한 정원에 혼자 남은 미다스왕 같은 존재가 양육의 목표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에겐 숱하게 인용되어 온 짐 캐리의 명언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고 꿈꿔온 모든 걸 얻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요.” ("I think everybody should get rich and famous and everything they ever dreamed of so they can see that that’s not the answer." Jim Carrey, 2005)



조금만 자기 힘으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확실함을 위장한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확실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 사기꾼을 물리치는 방법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덧. 올해 KBS <추적 60분>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시기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깊은 취재로 답을 찾아낸 방송이 많습니다. <추적 60분>뿐만 아니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MBC <PD수첩> 등에도 세상살이에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을 많이 다룹니다. 쉽게 접하기 힘든 전문가들의 식견도 모아볼 수 있고요.

매일 일과에 지친 상태에서 이런 골치 아픈 프로그램까지 챙겨보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긴 합니다. 하지만 불확실한 세상에서 단 한 시간의 영상을 통해 주변 일들에 관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들은 유튜브(추적60분, PD수첩)나 홈페이지(그알)에서 무료로 제공됩니다.


Q 파일 : 세상의 숨겨진 이면과 우리가 놓친 진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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