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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약

너의 이별에 부쳐

by 재원


너는 오래 만난 애인과 헤어졌다고 했다.


너는 종종 그 사람과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네 이야기 속의 그 사람은 착하고 순수한 사람 같았다. 자기 욕심을 늘 뒤로 하며 남한테 폐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을 묵묵하게 찾아서 먼저 하는 사람이었다.


네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고 직업인으로 자리 잡고 바쁘게 지내는 동안, 그 사람은 프리랜서로 일을 했지만 잦은 실직 상태에 놓여야 했다. 수입은 너보다 현저히 적었고 사람들의 시선도 박했다.


너는 데이트 비용을 늘 네가 부담했지만 그건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때로 누군가 더 부유할 수도, 더 가난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변화하며, 사랑하는 사이에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네게 기쁨이었다고 했다. 너를 오래 알아온 사람으로서 나는 그것이 깊은 진심임을 안다.



그런 선의에도 불구하고 너희의 상대적인 격차는 조금씩 관계에 균열을 냈다. 그 사람은 늘 신세만 지는 자신의 모습을 못나게 생각했고, 생활비조차 부족한 경제 사정 때문에 불안감에 시달렸다. 천성적으로 유쾌하고 밝은 그 사람이 우울해하거나 곤두서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결혼을 비롯한 안정적인 미래를 생각했던 너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너는 이별을 택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 달 넘게 흘렀지만 죄책감과 미련이 너의 말에 짙게 묻어났다.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사랑은 연민과 다르고 관계는 동정일 수만은 없다. ‘좋은 사람’과 ‘내가 함께해서 행복한 사람’은 다를 수 있다. 네가 늘 감당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돌봄 계약이다. 연애 상대가 아닌 보호자로 존재해야 하는 관계는 언젠가 무너진다. 너의 약함도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 했다.


너의 선택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정직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건 자연스럽다. 그 깊은 고민 끝에 너는 이 관계에서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만두는 것이 오히려 배려였다. 억지로 계속하다 더 상처 깊은 이별을 할 수도 있었다.



너의 아픔은 네가 너무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는 자책에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아이처럼 밝고 착한 사람이, 이토록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데... 그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린 자신에 대해 너는 이미 유죄였다.


그런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 사람이 너를 의도적으로 힘들게 하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은 그저 불안과 무기력 때문에 ‘최선을 다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알기에 너는 미워할 수도 없었다. 네가 인간이라는 한계를 지닌 이상 끝까지 품을 수도 없었다. 너는 정직했고 사랑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너는 물었다. 이 선택이 잘한 것인지를. 아마도 한 달째 스스로 묻고 있는 질문을 비로소 밖으로 꺼낸 것 같았다. 잘했다기보다 그저 더 안 좋은 선택을 피한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그건 꽤 큰 의미였다. 우리는 늘 최선의 경로로 갈 수 없다. 안 좋은 길을 피할 수 있다면 괜찮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미련이라는 문제가 남았다. 너는 종종 미련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 미련은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 미련은 그저 빈자리에 일어나는 연기 같은 감정이다. 꺾인 꽃에도 오래 향기가 머문다. 사람이 있던 자리에 미련이 없을 수 없다. 너의 미련은 돌아갈 이유일 수 없다.


너는 그만큼 진심이었다. 그렇게 깊은 마음을 주었기에, 더 감당할 수 없었던 순간에 너 스스로를 지킨 것도 이해받아 마땅하다. 모든 이별엔 후회와 해방이 뒤따른다. 지금도 그런 바람이 불어올 뿐이다.


한편으로 미련은 너에게 유혹의 속삭임인 것 같았다. 나는 너에게 냉정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그 사람을 만난다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너의 미련은 단지 치미는 외로움을 없애고 싶은 욕구는 아닐까?


이 질문들에 솔직한 답을 했던 너는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다음에는 네가 감당해야 하는 연애가 아니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로 성장하는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랜 친구이자 후배 J에게. ☀





자신에게 처방하는 쓰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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