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오가는 10km가량의 도로에는 곳곳에 어린이 보호구역이 있습니다. 원래 흰 페인트로 횡단보도가 칠해져 있었는데, 어느 틈엔가 점차 노랗고 선명한 색깔로 바뀌고 있네요. 맑은 낮에 지나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입니다.
늘 쫓기듯 이 도로를 오갑니다. 그러다 보니 고속으로 달리다가 급정거를 하는 경험을 몇 번 했습니다. 시속 30km... 실제로 지나 보면 치타처럼 뛰다가 갑자기 거북이가 되는 느낌이 듭니다. 출근시간이 다가올 때는 속이 타죠.
어린이 보호구역의 속도 제한에 대해 운전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마구 달리고 끼어들고 양보 한번 했다가는 벼락이라도 맞는 줄 아는 (일부) 한국 운전자들 입장에서 화가 날 만도 하죠.
어린이 보호구역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 사회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 어른들은 항상 빨리빨리 움직여서 피땀나게 일해야 합니다. 매일 살기도 팍팍해 죽겠는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느라 내 일이 늦어지거나 방해받으면 열받을 수밖에 없겠죠.
이런 분노의 배경에는 한편으로 별로 중요치 않은 누군가 때문에 내 이익이 침해받는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0.5 정도의 존재인데 그 미완성들을 위해 이렇게 잔뜩 노란 칠을 해놓고 내 차가 달리다가 멈춰야 한다는 게, 행여 갑자기 애들이 튀어나와서 부딪히기라도 하면 감옥 갈 수도 있다는 게 화나는 겁니다.
만약 마동석 보호구역 같은 걸 만들어서, 마동석처럼 덩치 크고 무서운 사람이 거들먹거리며 지나갈 때 잠깐 멈추거나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나 화를 낼까요?
문득 이 길을 지나는데 이렇게 어린이 보호구역이 많아지고 선명해지는 변화가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사회가 온통 비용과 사람을 줄이고 속도를 추구하는데요. 어린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간을 늘리는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는 게 신기했달까요?
제가 좋아하는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주이라는 아이가 어느 주말 공부방 오는 길에 마주친 어른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일요일인데 공부방 가느라 힘들겠구나~”
아이는 공부방에 와서 선생님한테 그 말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라고 하죠. 어른의 사소한 배려가 아이한테 세상은 따뜻한 곳이라는 세계관을 세워준 겁니다. 이 얘기를 읽으며 “어린이한테는 어른들이 곧 환경이고 세계”라는 문장을 마음에 적었습니다.
어린이를 생각할수록 어른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시나요? 저는 어린이 보호구역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시속 30km로 달리는데 익숙해질수록, 어른들 역시 숨 한번 깊게 쉬고 하늘도 보고 자신도 돌보며 살 틈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
자신에게 처방하는 쓰는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