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장 29절)
위 성경 구절에서 시작된 ‘마태 효과’라는 말이 있다. 1960년대에 어느 사회학자가 과학계의 자원 배분 과정을 보고 떠올린 개념이다.
힘 있고 저명한 학자는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끌고 지원금도 독식한다. 반면 대부분의 평범한 학자들은 충분한 자원을 얻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렇게 힘과 유명세로 인해 격차가 커지는 현상을 ‘마태 효과’라고 한다.
자산 불평등이나 교육 격차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마태 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사회가 알아서 나아지거나 발전하는 것은 아니며, 바로잡기 위해 누군가 애쓰지 않으면 끝없는 악순환에 들어설 수 있음을 경고한다.
너무 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숨이 막히는 와중에 나는 어떤 성폭력 사건에 매달려있다.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다. 가해자는 힘과 지위가 있고, 그는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어린 여성 피해자들을 골라 범행했다. 피해자들은 고통받고 있지만, 자신들이 겪은 일을 증언했다가 보복을 당하거나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피해자의 편에 서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숨막혀 보인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겪은 일을 사실대로 말한다’는 상식적인 행동을 하려고 할 뿐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무섭다. 자신의 커리어와 경제적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뒤이어 가해자가 언제든 물리적, 정신적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공포까지 따라온다.
그래서 여러 피해자들이 결국 증언을 포기했다.
가해자는 자신의 힘과 돈을 이용해 성폭력 가해자들을 변호하는 거대한 법률 시장의 조력을 받는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지 똑똑한 사람들이 긴 시간 궁리하며 만든 ‘법률 서비스’는 마치 전쟁터의 생화학 무기 같다.
누군가 입이라도 뻥끗하면 명예훼손 고소와 무고로 (지든 말든) 괴롭힐 거라는 의도적 소문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맞선 전선에 가스처럼 퍼져나간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약한 틈을 파고들어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호흡을 곤란하게 만든다.
사건의 해결이 늦어지는 것을 두고 ‘지연된 정의’라는 말을 많이들 쓴다. 하지만 정의가 지연되다 못해 박살나고 마는 꼴을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이런 일들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이 판은 구조적으로 기울어있다. 가해자는 범행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사람들과 농담을 나누고, 그의 지위는 여유로운 태도와 화학작용을 하며 애초에 사람들이 가졌던 의혹마저 희석시킨다.
법률가들은 가해자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을 불가역적으로 확정 짓기 위해 봉사한다. 변호사 윤리강령의 첫 번째 줄,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라는 말은 시험 칠 때나 의미 있는 말이었을까?
돈을 많이 주면 살인범이나 성폭행범 편에라도 서겠다는 법률가들이 늘어나는 것은 독특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직관적 반영이다.
돈벌이 외에 어떤 공적 가치에도 냉소하는 태도가 공기처럼 팽배하고, 이런 자본주의적 무관심이 사람들의 얼굴마다 떠오른다. 그로 인해 사회 구성원 사이의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진다. 당연히 무너진 둑의 끄트머리에는 어리고, 약하고, 돈 없는 사람들이 깔리고 있다.
“너는 벙어리처럼 말 못 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정의로 재판하며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
(잠언 31:8-9)
수천 년 전에 쓰였다는 성경에도 이런 당부가 적혀있는 것을 보면, 인간 사회에서 최소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과제였던 걸까. ☀
자신에게 처방하는 쓰는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