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추앙하는 현생 인물들을 소개하는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앞선 글에서 털어놓았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고, 저의 직업적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 인물입니다.
바로 마이애미 헤럴드지의 탐사보도 기자 줄리 브라운입니다.
엡스타인 파일
줄리 브라운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려면, 먼저 엡스타인 파일(Epstine Files)을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요즘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엡스타인 파일을 들어보셨나요?
이것은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남긴 기록입니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수백 명의 미성년자를 성폭행하고 추행한 더러운 범죄를 저지른 인물입니다.
엡스타인은 여러 미성년 여성들을 모아 미국의 재력가들뿐 아니라 영국 앤드류 왕자 같은 유명인과 섹스를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자신의 별장에 와서 언제 무슨 짓을 했는지 적었다고 합니다. 그 공개되지 않은 손님 목록이 바로 엡스타인 파일입니다.
미국에는 큐어넌(QAnon)이나 마가(MAGA)라는 이름의 극우세력과 음모론자들이 많습니다. 트럼프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이죠. 2021년,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국회의사당을 습격해 불을 지르고 점거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국가의 배후에서 선거를 조작하고 적국과 내통하는 좌파들의 딥 스테이트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엡스타인 파일에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미국 좌파 엘리트들의 이름이 가득할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민주당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빌게이츠 등의 인물이 엡스타인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일 겁니다.
트럼프는 그 점을 이용했죠. 자신이 당선되면 신속하게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선거때 했던 말을 뒤집고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지 않기로 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가장 큰 정치적 위기입니다.
8월 초 기준으로 미국 주요 언론사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기사들 목록에는 어김없이 제프리 엡스타인과 기슬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기슬레인 맥스웰은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착취를 도운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엡스타인의 동거녀입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엡스타인 파일을 감출까요?
엡스타인 파일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엡스타인과 가깝게 지내왔고 그의 별장에 놀러 간 적도 있습니다. 트럼프뿐 아니라 여전히 쟁쟁한 권력을 과시하는 수많은 기업가, 법률가, 정치인들의 이름이 들어있으니 위기를 감수하더라도 공개가 어렵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비밀 합의
사실 엡스타인 파일은 영원히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 한 14세 소녀의 가족으로부터 신고를 받은 팜비치 경찰의 용기 있는 수사로 엡스타인이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이 과정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제프리 엡스타인 : 괴물이 된 억만장자>에 상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혐의가 명백했고 증거도 충분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나 담당 경찰은 당연히 엡스타인이 중형을 받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법보다 돈과 인맥의 힘이 강했습니다.
2007년 엡스타인은 연방 검사와 거래해 자신의 혐의를 대폭 줄입니다. 플로리다 주의 죄를 인정하는 대가로, 연방 차원의 더 중대한 성매매 및 인신매매 혐의를 면제해 준다는 황당한 비밀 불기소 합의였죠. 비유하자면 강도살인범한테 물건을 훔친 죄를 인정하면 살인은 빼주겠다고 한 셈입니다.
마법 같은 사법 거래로 엡스타인은 고작 18개월형을 선고받습니다. 값비싼 변호사와 인맥, 돈으로 작업한 결과였습니다.
엡스타인은 그나마 수감기간 18개월 중 13개월을 ‘노동 출소(work release)’ 프로그램으로 감옥에 출퇴근하며 지냈습니다. 대부분의 수감 기간을 자신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휴양 생활처럼 보냈죠.
2009년 엡스타인은 형기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다시 전직 대통령, 영국의 왕세자, 팝스타들과 어울리며 건재를 과시했죠. 성폭행을 당한 미성년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 일으켜 세운 정의는 그렇게 박살나는 듯했습니다.
발굴
그때, 마이애미 헤럴드 기자 줄리 브라운이 이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줄리 브라운은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한 모든 수사 기록, 재판 기록을 긴 시간에 걸쳐 모았습니다. 법원이 공개를 거부하면 소송도 불사해 가며 치열하고 끈질기게 추적했죠. 그리고 그 자료 속에 ‘제인 도(미국의 사법기관은 남성 익명을 John Doe, 여성 익명을 Jane Doe로 표현)’로 익명화되어 있는 피해자들을 수소문해서 만났습니다.
어렵게 찾은 수많은 피해자들이 순순히 엡스타인의 범죄를 증언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십여 년 전 목숨을 걸고 처음 증언한 피해자들은 엡스타인의 권력에 모두 짓밟힌 상황이었죠. 그걸 지켜본 다른 대다수 피해자들의 마음은 더욱 꽉 닫혔을 겁니다. 줄리 브라운이 만난 대부분의 ‘Jane Doe’들은 증언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어둠의 장막을 송곳처럼 찢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기적처럼, 피해자 8명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를 냅니다.
이때부터 줄리 브라운의 엡스타인 추적은 탄력을 받습니다. 피해자들의 새로운 증언과 어렵게 입수한 미공개 수사 자료를 묶고, 2007년 엡스타인이 연방 검사인 알렉산더 어코스타와 했던 더러운 거래의 전말도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 밝혀냅니다.
이윽고 2018년 11월, 줄리 브라운은 <뒤틀린 정의 (Perversion of Justice)>라는 강력한 탐사보도 시리즈를 내놓습니다. 엡스타인이 황제 같은 수감생활을 마치고 풀려난 지 거의 10년 만이었습니다.
줄리 브라운의 보도 이후 전 미국에 엡스타인에 대한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납니다.
이듬해인 2019년 뉴욕 남부지검은 엡스타인을 체포해 성범죄 혐의로 다시 기소했습니다. 한편 더러운 사법 거래의 당사자, 엡스타인과 형량 거래를 했던 연방 검사 알렉산더 어코스터는 승승장구하다 이때 트럼프 정부의 첫 노동부 장관이 되어있었죠. 그 역시 국민들의 분노에 못 이겨 결국 자진 사임 형식으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엡스타인은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이 확실시되자 재판을 앞두고 죽음으로 도피합니다. 장제원이나 박원순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남기지 않는 자살, 끝까지 비열하고 치졸한 선택이었습니다.
인고의 시간
10년.
어떤 불의를 알게 된 저널리스트가 그 문제를 알리기 위해 추적하고 좌절하고 기다리고 다시 시도했던 시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혼자만의 싸움을 벌여야 했던 암흑 속의 발걸음.
앞이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줄리 브라운은 어떤 생각을 하며 버텼을까,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그 시간 동안 피해자들이 여럿 자살하거나 죽었습니다. 피해자 캐롤린 안드리아노는 용기 있는 실명 증언에 나서 기슬레인 맥스웰(엡스타인의 동거녀이자 공범)이 징역 20년 선고를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2023년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2017년에는 또 다른 엡스타인 피해자였던 리 스카이 패트릭도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둘 다 미성년 시절 성폭행 이후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그것이 우울증과 경제적 위기를 거쳐 약물중독으로 이어진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그리고 올해 4월에는, 엡스타인 성폭력의 생존자로서 앞장서서 싸웠던 버지니아 주프레가 자살했습니다. 그녀는 엡스타인이 영국 앤드류 왕자 등 세계적 거물들에게 자신을 보내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한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정의는 그저 지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끄는 사이 조금씩 금이 가고 원래 우리가 회복했어야 할 모습을 잃게 됩니다.
자본주의적 무관심
그나마 지금 전 미국인들이 엡스타인 파일을 알게 되고, 엡스타인이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은 줄리 브라운 같은 저널리스트의 치열한 탐사보도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장기 추적 보도를 하는 언론사들은 갈수록 재정난을 겪습니다. 거의 입수가 불가능한 수준의 자료를 얻기 위해 수소문을 하거나 자료공개 소송을 걸고,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일은 돌밭을 옥토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몇 년을 쏟아부어도 단 하나의 결실이 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마이애미 헤럴드 역시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했습니다. 모회사인 맥클레치는 2021년 파산 위기 끝에 인력을 200여 명가량 줄였습니다. 마이애미 헤럴드의 인력 유출은 지금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어디선가 진행 중일지 모를 또 다른 엡스타인들의 범행과, 그것을 덮으려는 권력자들의 단단한 공모를 추적하고 들춰낼 저널리스트들이 이렇게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갖 자극적인 뉴스는 넘쳐나지만 저널리즘은 소멸하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것 외에는 관심이 모이지 않는 사회를 두고 <더 네이션>의 에릭 알터먼은 중국 사회와 비교해 이렇게 지적합니다.
“시진핑 주석 집권 하에서 비판적 보도를 하는 중국 언론인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당국은 수십 명의 기자를 괴롭히고 투옥했으며, 언론사들은 심층 보도를 축소했다. 중국이 공산주의 탄압으로 성취한 것을 미국은 자본주의적 무관심으로 성취하고 있다.”
공산당이 언론 통제를 해서 비판적 목소리가 사라진 중국 사회와, 언론사가 '자본주의적 무관심’으로 인해 알아서 망해가는 미국 사회가 결과적으로 무엇이 다르냐는 뼈아픈 지적입니다.
이렇게 무너지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제 역할을 합니다. 사적 이익도 없고 일자리가 위협받아도 누군가는 자기 업에 요구되는 공적인 역할을 지킵니다. 그것이 바보 취급을 받는 영리한 세상에서, 줄리 브라운의 10년에 걸친 노력은 하나의 영감이자 희망이 됩니다.
이것은 그런 작은 희망의 근거를 붙잡으려는 기록입니다. 또한 누군가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희미한 신호입니다. ☀
자신에게 처방하는 쓰는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