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서울>을 보면서 쓰다.
자폐의 유혹
자폐의 유혹. 박완서 작가님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쓴 에세이에 나오는 말입니다. 힘들 때면 견딜 수 없는 자폐의 유혹이 찾아왔지만, 세상으로 나설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힘이 글쓰기였다고 합니다.
십 년 전쯤 본 이 말이 제겐 강렬했습니다. 밤안개 같던 감정이 비로소 만져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고통은 흔하고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나는 그만큼 민첩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하루는 그저 버티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견디고 나면 심한 자폐의 유혹이 찾아오던 시기였지요.
자폐. 스스로 문을 닫고 은둔하는 청년이 늘어나서 문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자기 방의 문턱을 간신히 넘어가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문턱을 넘는데 겨우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
지난달 시작한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얼굴만 똑같고 삶은 완전히 다른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인생을 바꾸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밝고 당차지만 내면에 깊은 상처를 숨기고 있는 유미지, 기대를 받고 살아왔지만 끝내 완벽할 수 없는 자신에게 지친 유미래. 두 인물을 모두 박보영이 연기합니다. 정교한 연기 덕에 마치 주변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생생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특히 4화에 나오는,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 은둔하는 미지의 모습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이 부분을 여러 번 돌려봤습니다.
미지는 부상 때문에 육상을 접은 뒤 3년 동안 방 안에 갇혀 지냅니다. 할머니의 병환까지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미워합니다. 미지는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 대문 밖 세상과 마주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괴로워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너무 어렵고, 세상에 나가 견디는 일이 너무 힘든데, 죽을 수도 없어서 남은 날이 무섭도록 많게 느껴지는 그 막막한 마음이 마치 내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지가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는 모습에서 우리 시대의 많은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볼 때 위로를 받을까요. 보통은 나쁜 놈이 지고, 착한 사람이 이기고, 그런 공정한 결말을 보며 현실의 부조리를 잊으며 위로를 얻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절반쯤 지난 지금까지도 온통 위기와 힘든 현실의 반복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지의 서울>은 깊고 따뜻한 위로를 줍니다. 우리가 매일 겪으면서도 제대로 이름 붙이지 못했던 두려움의 형태를 정확하게 그려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짜 위로를 얻는 순간은, 내 고통을 누군가 정확히 알아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우리가 느끼면서도 말하지 못했던 어떤 답답함의 이름을 불러주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삶을 바꿔 살 수 있다면
또한 <미지의 서울>은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줍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며 제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순간들을 돌아봤습니다. 어쩌면 내가 당신을 잘 알게 되었다고 느낀 그 순간이 오해의 정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주로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을 봅니다. 그러니 오해가 일상인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우리의 오해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삶을 바꾸어 살아보며, 상대의 입장이 되어봄으로써 마침내 이해로 나아갈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삶을 바꿔 살아봄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니 판타지겠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너무나 현실적인 판타지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만듭니다. 내가 몰랐던 타인의 마음과 삶의 무게를 세밀한 감정선으로 그려내면서,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줍니다.
어쩌면 제가 <미지의 서울>에 푹 빠진 이유는 이런 다정한 목소리가 그리웠던 탓일 겁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하루를 힘겹게 버텨냈다면, 미지와 미래의 이야기를 만나 보길 권합니다.
특별한 해답은 여기 없습니다. 다만 이 작품을 매개로 그저 함께 버티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위안을 줍니다. 값진 책 한 권을 읽는 것처럼 생의 깨달음을 전하는 깊은 대사들과 함께요. ☀
보나쓰 : 주말쯤 좋은 것들을 보고 나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