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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나쓰

상품성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

<머티리얼리스트>를 보고 나서 쓰다.

by 재원


셀린송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를 재밌게 봤습니다.


1.jpg 루시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로 얼굴을 알린 배우 다코타 존슨


루시는 뉴욕에서 커플 매니저로 일합니다. 여성, 남성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맞춰 상대를 매칭시켜 주는 일이죠. 루시의 매칭 성공률은 매우 높습니다. “인생 최초로 잘한다고 인정받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이뤄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혼자입니다. 왜일까요? 루시가 남자를 찾는 기준이 꽤 까다로워 보입니다. 스스로도 속물(Materialist)이라고 말할 정도로 상대를 볼 때 돈이 절대적인 기준이죠. 그러면서 꾸밀 줄도 알고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남자를 찾다 보니 쉽게 연애를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매칭시켜 준 커플의 결혼식장에서 유니콘 같은 남자 해리를 만납니다. 1200만 달러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모펀드 매니저, 자산운용사를 하는 집안의 막내아들이고, 잘생겼는데 스타일도 좋습니다. 게다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의 가치"를 찾느라 아무 여자나 안 만난다는 품격 있는 남자죠.


2.jpg 해리(오른쪽) - 요즘 헐리웃에서 가장 핫한 배우 페드로 파스칼


해리 vs 존


부유한 남자 해리는 루시가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다고 말하자 바로 여권발급과 여행 예약까지 해줍니다. 돈으로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갖췄으면서도, 이런 남자들에게 흔히 느껴지는 자의식이나 허세가 없죠. 루시는 해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너무 꿈에 그려왔던 모습이라서요. 이런 남자가 왜 나를 좋아하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는 중에 루시는 전 남친 을 우연히 마주칩니다. 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루시가 이십대에 오래 만났던 남자친구입니다. 만년 무명 배우이자 주차요금 몇 달러로 박터지게 싸워야했던 궁색함이 싫어서 헤어졌던 사람입니다. 십 년 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무명 배우이고 뷔페 알바를 하는 중이었죠.


그런 신세지만, 루시는 존과 보냈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가장 깊이 대화가 통했고 고민이 있을 때 마음의 안식이 되어줬으며, 힘들 때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지켜주는 사람, 루시에겐 그런 남자가 존이었습니다.


두 남자는 루시에게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상징합니다. 경계선을 두고 양쪽에 서 있죠. 저는 이 영화를 주인공 루시가 그 경계선을 오가며 자신을 탐구하고 발견해 가는 이야기로 보았습니다.


경계선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기에 불안한 자리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죠.


3.jpg 존(왼쪽) -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번스


우리가 어느새부턴가 스마트폰을 당연히 들고 다니듯, 이제는 데이팅앱이나 커플매니저를 통해 짝을 찾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습니다. '자만추'나 '지인소개팅' 정도를 할 때보다 훨씬 대량으로 다양한 이성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유행의 배경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만남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이 수치화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목록에 나열되고, 그 안에서 빠르게 평가의 단서를 얻고 선택해야 하니 불가피한 일이죠. 나이, 키, 외모, 학벌, 직장 같은 직관적인 정보들로 한 사람이 표현됩니다.


그 목록은 끝없이 채워지고 사용자는 누군가를 골라야 합니다. 마트에 진열된 상품처럼 비교하며 사람을 고르는 셈이죠. 게다가 사람을 대량으로 만나고 동시에 여럿을 비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과정은 마트에서 여러 제품을 골라서 써보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상거래스러운’ 만남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이 가능한가? 이익과 조건을 우선시하는 현대 사회의 속물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이것이 <머티리얼리스트>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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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들도
사랑할 수 있을까?


이것은 꽤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루시가 십 년 전 그렇게 잘 맞는 존과 헤어진 이유도 가난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었으니까요. 흔히 하는 말로 사랑이 밥 먹여주지는 않지요.


그러나 그 반대편의 상황도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건이 화려한 해리 같은 남자를 선택하면 잠시 우쭐하겠지만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기대하는 모든 감정적 충족을 얻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결국은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에 앞서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답을 먼저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짝에게 충족감을 얻는 사람인가, 내가 사랑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준비가 되어있을까?... 등등.


루시는 해리와 시간을 보내며 깨닫습니다. 커플 매니저로 성공하고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난 후에도 더 부유한 남자를 기다리며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가릴 명품 옷이었다는 것을요.


근데 막상 옷을 걸치고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뭔가가 없는 거죠. 미다스 왕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황금인데 마음이 공허한 느낌... 그렇게 루시는 사랑을 찾는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해 갑니다. 계산을 통해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겠지만, 어느 시점에는 계산을 내려놓아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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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낭만적 결론에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은 영화를 다소 오독했다고 생각합니다.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철없이 낭만적인 사랑이 답이라는 결론이 아닙니다.


비싼 옷을 걸치듯 자신을 더 빛내보이기 위해 누군가를 선택하는 거라면, 그것은 결국 자기를 사랑하는 일이기에 끝내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들었던 생각입니다. ☀




보나쓰 : 주말쯤 좋은 것들을 보고 나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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