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타이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길에 나는 자연스레 나나역 근처의 번잡한 거리를 걷게 됐다. 그 근방은 정말로 세계인의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쩜 그렇게 온갖 인종들이 빠짐없이 모여있던지... 다만 그 와중에 뭔가 특이한 풍경이 하나 있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 다섯시쯤. 길가로 테라스를 낸 맥주집 테이블에 나이 50~60 정도 되어 보이는 서양인들이 하나씩 앉아있었다. 같이 앉아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한 명이 테이블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쓸쓸하면서도 무료한 표정으로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가끔 여자가 한 명씩 끼어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김없이 남자는 서양 노인, 여자는 20대 전후의 태국인들이었다.
나나역 근처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태국 성매매 산업의 중심지다. 태국에 체류 중인 친구 K의 설명을 듣자하니 이름도 종류도 복잡한 온갖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개발된 국가에서 돈 좀 벌어놓은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저개발 국가 여성들의 저렴한 성노동을 구입하는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가 그곳이었다.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해가 진 뒤의 적나라한 서비스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그 남자들의 풍경은 어딘가 말세적이었다. 모든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 후 사람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산업을 만든다면 반드시 그 산업은 흥하리라. 그런 방식으로도 여전히 누군가는 돈을 벌고 경제는 성장한다. 그리고 얼마쯤 올라가는 GDP 수치를 보며 인류는 스스로 발전한다고 믿을 것이다.
방콕에서 맞은 첫 주말, 오랜 친구 K를 만났다. 한국이 싫다며 번듯한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떠난 K는 싱가포르에서 대학원에 다니다가 지금은 방콕에서 일하고 있었다.
텅러 거리의 일본인 마을 근처에 사는 그의 안내로 나는 처음 방콕에서 그럴듯하게 맘에 드는 동네에 가봤다. 텅러 17길에 있는 더 커먼즈(The commons)는 세계인들의 놀이터 같은 장소였다. 그곳에는 카페와 맥주집, 고급 음식점과 상점들이 번잡하지 않은 적당한 사이즈로 모여 있었다. 방콕에 새로 생긴 가장 힙한 장소로 태국 부유층이나 일본인 마을 근처의 외국인들에게 조금씩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었다.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에 태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격대는 태국 물가의 곱절은 되는 듯했고, 거의 동아시아 사람들이나 서양인들만 보였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사서 야외 계단 테라스에 걸터앉았다. 세련된 팝음악이 시끄럽지 않을 만큼 적당히 깔렸고 간간이 갓 볶은 커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곳곳에서 술을 마시거나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유로워 보였다. 아이스크림 판매대 근처에 서서 친구들과 맥주를 홀짝이던 예쁘장한 중국 아가씨가 자꾸 눈길을 주기도 했다.
해가 진 후 K와 짜오프라야 강 수상보트를 타고 아시아티크(Asiatique)로 갔다. 아시아티크는 ‘유럽풍 야시장'을 표방해 만든 관광지인데, 각종 상점과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이런 장소에 가보면 방콕이야말로 진정 관광객을 위한 기획 도시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곳의 한 럭셔리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똠얌꿍을 비롯한 여러 음식을 시켰다. 야경을 조망하며 야외에서 식사할 수 있는 그곳의 가격은 한국의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 수준에 버금갔다.
맥주를 곁들여 여러 음식을 맛본 후, 우리는 K의 안내로 다시 텅러 거리로 돌아왔다. 요금이 1200원쯤 하는 오토바이 택시에 올라타 꽉 막힌 차로를 아슬아슬하게 질주해 순식간에 도착한 곳은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커다란 건물 앞이었다. 위층에는 태국의 부유층 젊은이들만 모인다는 클럽이 있었고, 1층 펍에는 외국인과 태국인들이 반쯤 섞여 가득 들어차 있었다. 건물 앞에는 벤츠나 BMW를 비롯한 고급 외제차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펍 안에는 최고 수준의 재즈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밴드 바로 앞에 K와 나란히 앉아서 공연을 보고 있는데, 비어 있던 옆 테이블에 스무 살을 갓 넘긴 듯 보이는 태국인 남녀들이 여럿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K의 설명에 따르면, 방콕에 사는 졸부 아들들이 외제차를 끌고 클럽에 가 헌팅을 해서 여자들을 데려오는 장소가 이 펍이라고 했다. 술이나 안주가 태국 평균 물가의 3~4배에 이르는 곳이었으므로 아무나 호기부리며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우리는 일종의 부유층 체험을 한 셈이었다.
내가 K에게 말했다. 오늘 다녀본 곳들만 생각하면 방콕에 온 것 같지가 않다고. 좀 더 태국다운 것들을 해야 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K는 뭐하러 태국까지 와서 서민 체험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나라에 오니 우리가 부유층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여행지에서 관광객을 위해 그럴싸하게 포장해놓은 곳만을 돌아다니는 것은 내 기준에서 좋은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K에게 여행은 또 다른 도시 소비활동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K와 시간을 보낼수록 전에는 몰랐던 생각의 차이가 느껴졌다.
K와 나는 어릴 때 만난 친구 사이다. 스무 살을 전후해 여행도 자주 같이 다녔다. 한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성향도 잘 맞아서 종종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둘은 꽤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K는 자연스러운 길을 갔을 뿐이고, 나는 자본주의가 빚어낸 갖은 병폐에 예민한, 그래서 그 혜택과 편리에 대해서도 저항감을 가진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5년이라는 시간은 각자가 향해 있던 길을 따라 우리를 멀리 밀어내 버렸다. 그 거리감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다음 15년 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과 멀어지게 될까.
그러면서 내 여행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입국자를 제한하기 위해 비싸게 책정된 부탄의 여행비 정도면 나는 방콕에서 훨씬 편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아니면 같은 비용으로 유럽 어딘가에서 인류에게 널리 알려진 스펙터클한 관광지를 둘러보며 그럴듯한 호텔에 머물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런 여행이라면 뭔가 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나라에 간다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겪고 먹고 입는 것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감으로써, 내게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하나 더 각인시킨다는 ‘경험의 성장'이라는 의미가 컸다. 물론 여행에 여러 가지 목적이 있고 그것 중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우리가 도시에서 늘 하듯 또 다른 자극거리를 찾아 현실에서 도피하는 차원이라면, 결국 그 여행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공허감뿐일 것 같다.
잠깐의 상류층 체험을 통해 나는 태국이라는 나라의 여러 모습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몇 미터만 걸어나가면, 거리에 빈민들의 포장마차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그 옆으로는 하루 장사로 먹고사는 허름한 오토바이들이 떼를 이루고 있었다. 걸식하는 사람들과 폐허 같은 집들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개발된 국가의 높은 화폐가치를 지렛대 삼아 여유를 즐기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이튿날은 복잡한 도시 방콕을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새벽사원으로 불리는 왓 아룬에 가기 위해 짜오프라야 강에서 수상보트를 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이십여 분을 가니 멀리 사진에서만 봐온 왓 아룬의 어렴풋한 실루엣이 강물 위로 떠올랐다. 왓 아룬에 가려면 동쪽에서 내려 강을 건너가는 보트를 타야한다.
별생각 없이 이 정도면 충분히 가깝다 싶은 곳에서 내렸다. 아차, 그런데 한 정거장 전에 내린 것 아닌가. 한데 그 순간 오히려 묘한 해방감이 밀려들면서, 꼭 저기를 가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항상 목적과 생산량에 부속되어 살아온 몸이니 오늘은 그냥 마음의 리듬을 따라 움직여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정말 내키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상보트도 웃긴 게, 원래 보트를 타고나면 안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돌아다니면서 새로 탄 사람들의 목적지를 물어보고 표를 내준다. 하지만 사람 수가 너무 많아지면 표를 다 끊어주기가 어렵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결국 내릴 때까지 표를 안 끊고 있는 나 같은 무임승차자가 생기는 것이다. 무슨 셔틀버스 타는 것처럼 그렇게 한 곳에 내렸다가 구경하고, 다시 보트를 타고 올라갈 만큼 올라가서 또 돌아다니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여행을 했다.
해질녘에 원예시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보트를 탔다. 노을 낀 금빛 하늘을 옅은 구름이 솜이불처럼 군데군데 덮고 있었다. 새들이 붉은 해를 따라 불려가고 바람이 빈자리를 채웠다. 신을 바라고 하늘로 솟은 사원들과 강가의 이국적인 수상가옥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묘하게 멋스러웠다. 짜오프라야 강의 아름다운 저녁 맞이였다.
이렇게 도심을 한 발 벗어나니 숨을 쉴 것 같다. 저마다 밀도에 대한 선호가 달라서, 누군가는 도심지의 부산스러움을 사랑하겠지만 나는 어쩌다 익숙한 사람 하나 눈에 띄고 그사이에 정겹고 야트막한 것들이 들어찬 조용한 동네나 골목을 좋아한다. 그런 동네를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이국의 강가나 연고 없는 시골 마을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성긴 공간에서는 언제든 고독해질 수 있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서울이 나는 힘들다.
이제 내일이면 새벽 비행기를 타고 부탄으로 떠나야 한다. 7월 말쯤 부탄을 여행한 사람들이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 부탄 포럼에 올린 글을 보니 남부지역에서는 ‘재앙적인' 수준의 비가 오고 있다고 한다. 한창 우기여서 부탄 여행에는 비수기인 8월... 하지만 꼭 여름에 잠깐의 여유밖에 주어지지 않는 한국인으로서는 불가피한 시기 선택이었다. 부탄의 관문인 파로 공항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