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서 쓰다.
사건은 어느 시골 마을 초상집에서 시작된다. 몇 명의 중년 남자들이 막걸리를 먹으며 떠들고 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듯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들. 거미줄 같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끈적히 얽힌 사이처럼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사내들이 내장을 다 토해낼 것처럼 구토를 시작한다. 그들을 전경으로 두고 한쪽 구석에는 상주가 얼빠진 듯 앉아있는데 슬픈 건지 그저 정신을 놓은 건지 모를 아리송한 표정이다. 난리통에 초상집 모자란 아들은 더 신이 나서 뛰어다닌다. 강렬한 첫 시퀀스.
신혜선
신혜선은 <비밀의 숲> 영은수 검사와 같은 듯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영은수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세상에 덤벼드는 단단한 풋내기 느낌이었다. <결백>의 안정인 변호사 역시 남성들의 부패한 커뮤니티에 강단과 실력으로 균열을 내는 인물이지만, 어딘가 더 깊은 아픔과 사연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어떤 배우를 보면 어느 자리에 갖다 놔도 늘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것처럼 지루하게 보일 때가 있다. 신혜선은 다르다. 이미 전혀 다른 시대와 정서를 가진 배역들을 완벽하게 소화해왔고, 이번 영화에서도 영은수와 안정인의 미묘한 차이를 충분히 잘 표현한다.
빛
또한 이 영화 촬영감독의 의도된 빛 연출이 안정인의 연기에 진폭을 더한다. 영화는 무엇보다 시각 자극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예술이므로 연출자는 빛을 의도껏 능숙하게 다뤄야 한다.
안정인이 바위 같은 말들로 악인들을 내리칠 때 빛은 건조하게 확산하고 색채를 뭉갠다. 그런 톤 안에서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안정인의 말은 무게감을 더한다. 하지만 후반부 감정선이 극대화되는 부분에서 빛은 인물을 입체적으로 감싸며 부드럽게 묻어난다. 빛을 잘 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항호
태항호에 대해서도 한 마디. 그를 <놀면 뭐하니>에서 처음 봤을 때는 별 임팩트가 없었다. 그런데 KBS 드라마스페셜 2019 <한 아이가 보았네>를 보면서 놀랐다. 이 단편 드라마에서 태항호가 보여준 소수자 연기는 대체 불가였다. 손짓 하나와 어미의 높낮이에 이르기까지, 배우의 원래 이미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수준의 깊고 디테일한 연기였다. 그때부터 눈여겨봤던 배우였는데, 이 영화에서도 신혜선의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맛깔나게 해낸다. (슬랩스틱 연기까지!)
세 번째 살인
영화 <세 번째 살인>에서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즈)은 변호사와 살인자의 동일성을 강조하고자 접견장 유리창에 두 사람의 얼굴을 겹쳐 놓는다. <결백>에서도 거의 비슷한 연출이 보인다. 엄마(배종옥)가 사건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실체가 드러나는 즈음, 남성들의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살아온 두 여성의 연대감이 <세 번째 살인>과 비슷한 구도로 표현됐다.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과잉 신파
내내 좋았던 이 영화의 단점은 신파의 과잉이다. 감독(=작가)이 목소리를 크게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자본 투자자를 상대해야 할 때 영화가 신파 과잉극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뇌피셜이지만 투자배급사에서 완편 시사를 한 뒤 "여성 관객 눈물 좀 빼게 신파를 더 넣읍시다" 따위의 말을 했을 것 같은 느낌.
기술시사회(색보정이나 음향 등 후반 작업을 작은 실내 작업실에서 하기 때문에, 후반 작업 끝난 후 극장 대형 스크린에서 1차 완본을 틀어놓고 다 같이 보는 것)에서 작품을 먼저 본 배종옥 배우가 “엄마의 모성보다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부각될 거다. 우리가 엄마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희생이나 포근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엄마를 엄마로만 보는 그런 문화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 이렇게 정서적으로 성숙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씨네21 2020년 3월 1247호)라고 말했고, 그래서 엄마엄마 하며 눈물 쥐어짜는 영화는 아니리라 굳게 믿었는데.
결과물은 달랐다. 모성과 눈물이 지나치게 부각된 나머지, 초중반까지 스릴러의 팽팽함에 깊이 몰입돼 있던 감정들이 깡그리 회수되는 느낌이었다. 자기 자신이 불쌍해서 못 견디겠다며 울어버리는 사람을 두고 끝까지 공감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이런 못난 친구 같은 한국 상업영화 그만 보고 싶지만!
장점이 더 많았고 재밌으니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