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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Oct 17. 2020

김지은입니다 | 진보남성의 무한한 발견

보고 나서 쓰다.


처음 이 책을 살 때는 읽을 생각보다는 연대하는 마음으로 샀다. 나 스스로 완전하게 김지은 씨 편이고, 내가 이 사건에 대해서도 다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몇 장 정도 읽었을 때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피해자의 생각과 감정은 내가 그러려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아팠고, 사건의 개요와 전말에 대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예를 들어 나는 안희정 아내 민주원이 페이스북에 썼던 내용들, 그리고 언론이 사실에 대한 검증 없이 신나게 받아쓰기했던 내용들(김지은 씨가 안희정 부부의 침실에 갔다든가, 안희정이 좋아하는 메뉴를 늘 챙겨서 예약해줬다든가 하는)에 대해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만 사실이면 뭐? 성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는데 저런 지엽적인 얘기들이 무슨 필요가 있지? 정도의 생각을 했다.

하지만 김지은 씨가 책에서 구체적으로 밝힌 정황, 그리고 재판에서 인정된 사실들에 따르면, 민주원 씨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조회수 장사에 목멘 미디어들은 검증도 없이 민 씨의 주장을 퍼 날랐다. 저마다 칼날을 들고 피해자의 심장을 후벼 판 또 다른 중범죄였다.


JTBC에 출연해 안희정의 성폭력을 증언한 김지은 씨


재판을 이기고 성범죄를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안희정 측은 강력하고 체계적인 여론전을 벌였을 뿐 아니라 김지은 씨를 위해 증언해준 주변인들을 공격하고 회유했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김지은 씨의 과거 개인사(이혼)를 흘려 대중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도 했다.

오직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조작된 진술들의 힘은 강력했다. 평소 침실에 들어오는 이상한 여자, 내 남자를 유혹하는 엽기적인 여자라는 주장은 일부 대중 사이에서 아주 치명적인 정보처럼, 사건의 핵심을 쥔 사실인양 회자했다. 전략의 목적은 명확했다. 메시지를 반박하지 못하니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172쪽)


이 과정에서 안희정 패거리가 보였던 행동들, 그러니까 지금의 집권세력이자 유력 대선주자의 선거팀이었던 사람들의 언행은 실로 우리가 상상 가능한 가장 후진 모습이었다. 586 남성들에게 기대를 버린지 오래되었으나, 그들로부터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을 읽고 있자니 또 다른 차원의 악취가 느껴졌다.

...일부 선배들은 "너희들은 대통령 만들러 온 거야, 원래 정치권은 이래"라며 폭력을 묵인했고, 또 그들 자신이 가해자이기도 했다. 노래방에 가 여자 후배를 옆에 앉혀 술을 따르게 했고, 노래를 부르게 했다. 머리나 뺨을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고, 볼을 비비거나 껴안기도 했다. 술자리를 지키라며 새벽까지 집에 가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당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충격적으로 괴로워 어느 선배에게 토로했지만 "그 형님한테 내가 어떻게 뭐라고 하냐. 대신 내가 미안하다. 그냥 우리가 조심하자"라는 대답뿐이었다. ... 조직의 문제는 세상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서로의 견고한 감시와 '대통령 만들기'라는 강한 대의명분 아래 다른 모든 사실은 수면 아래 숨겨졌다. (81쪽)
이곳에서 나는 암묵적 제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안희정의 일부 측근들은 모임이 있을 때면 대부분 안희정의 좌석 옆에 여성들을 앉게 했다. "지사님은 여자밖에 몰라" "지사님 가까이 여자가 있어야 분위기가 좋아져" "지사님의 기쁨조가 되고 싶어도 우린 남자라 못 하니까 너희가 최선을 다해." 여성 참모들에게 그런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다. 이런 술 문화는 조직 내에 만연했다. 한 참모는 회식 때면 소속 직원이었던 여자 아나운서와 어린 여성 조연출을 옆에 앉히고 술을 마셨다. (107쪽)



‘나는 암묵적 제물’이라는 김지은 씨의 표현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 말했던 안희정이나 그 패거리들이 보기에, 여성은 그저 자신들을 즐겁게 해주는 성기구 정도의 의미 아니었을까? 8,90년대에 불의한 권력에 맞서 화염병을 들고 거리에서 싸웠을 그 진보인사들, 성범죄자 안희정네 상갓집에 바글바글 모여들었던 그 사람들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정신의 시작이자 근본은 무엇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전태일의 항거일 것이다. 자신이 굶어가며 돈을 모아 미싱 사업장의 최하층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다 주고 교통비를 대주던 전태일뿐 아니라, 전두환의 군대가 쳐들어올 것을 알면서도 5월 21일 도청으로 들어갔던 광주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라는 단순한 가치였다. 80년 광주와 전태일에 비춰보아 저들의 어떤 구석이 진보적인가.

내가 나 혼자 생각이나 정리할 요량으로 여기에 글을 적지만, 우연히 이 글을 읽는 몇 명의 분들이라도 더 이상 저들에게 표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젠더 문제에 대한 딱 하나의 인식만으로 우리는 어떤 정치세력이 만들려는 세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곳에는 여성이 없고, 장애인도 없고, 수많은 성소수자들도 없다. 지방 사람들도 없고 이주민들도 없다. 그저 빨간색 정당을 무찌르고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중노년 한국 남성들의 세상을 만들려는 것인데,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은 그보다는 더 근사한 모습이어야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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