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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n 16. 2024

부천 아싸의 커뮤니티 체험


그런 자리에 앉아있다니 쵸금 어색했다. 뭐랄까, 블루스퀘어 같은 곳에 뮤지컬을 보러 가서 잘 꾸미고 나온 주변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으면 뭔가 그럴듯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들지만. 부천시청에서 하는, 무료 ‘북토크’에, 무려 시장님이 초대손님으로 나오신다니, 뭔가 주눅 든 공무원들이 줄줄 서서 구린 풍경을 연출할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행사 시작. 못마땅한 구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 유명세가 있는 작가님의 강연과 북토크를 서울이 아닌 부천의 집 근처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에 끌려 불금 저녁에 나는 그곳에 갔다. 하지만 연사에게 청할 수 있는 2시간 안에 강연도 넣고 시장님과 토크도 넣으려다 보니 실제 강연 시간이 40분 정도로 짧아진 모양이었다. 강연을 온 작가님은 준비한 PPT를 몇 장 패스하며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이 준비한 말을 끝내려고 했다. 나는 일종의 '인문학적 미래 예측서'를 쓴 그의 논리나 디테일이 궁금해서 들으러 간 건데, 뭔가 시간을 맞추려고 건너뛰면서 약간 논리의 비약이 느껴졌다.


송길영 작가와 함께한 차이나는 북토크. 중간에 뮤지컬 공연을 넣는 엉뚱한 연출을 했는데, 토크하는 사람을 멀뚱하게 중간에 앉혀놓았다. 보는 입장에서 조금 부끄러웠다..


진짜 경청


책의 내용은 아직 삶의 방향을 정해 가는 이삼십 대 경제활동 인구에게 더 의미 있을 듯 하지만, 객석에 그 나이대 청년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다들 관 주도의 행사에 의구심(?)을 거두지 못했을까? 아니면 이런 행사를 몰랐거나 알게 되었다 해도 삶의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이 북토크는 부천시립 상동도서관에서 주최를 하고 부천시청 차원에서 약간의 홍보를 한 모양이다. 상동도서관에 가보면 이삼십 대는 대부분 취준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고 그 외에는 50대 이상의 장노년층이 대부분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자신의 하루를 공부와 사색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 도서관의 공기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취준의 고단함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청년들이 빠지고 나니, 대부분 객석에는 지역의 어르신들이 앉아있게 된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50대 전후 여성들이 많았다. 이분들이 강연을 들으며 작가와 상호작용하는 태도를 관찰하며 보는데 흥미로웠다. 호의가 가득한 그 청중은 강연자의 호응 유도나 질문에 즉각 반응했다. 약간 문화센터 느낌이랄까? 그런 과해보이는 리액션이 처음에는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강연자가 하는 ‘경쟁하지 말아라’, ‘자기 고유의 영역을 가져라’ 같은 충고가 평균적인 대한민국 50대 여성의 삶에 어떻게 가닿을지도 애매했다. 계절로 치면 가을, 사회적으로는 경력 단절과 임금 불평등, 과중한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이 떠오르는 나이다. 하지만 내가 관찰하기로 분명한 건, 그들은 굉장히 진심으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메모하는 용도가 아니면 아무도 폰을 보지 않았다. 진짜 경청이었다.


뜻밖의 공연과 어색한 침묵


시장님 어택


강연이 끝나고 부천시장이 나와서 토크가 시작되었다. 젊은 사회자의 능숙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시장님은 뭔가 국어책읽기 토크를 해서 약간 지루해지려는 찰나,


토크 중간에 객석 의견을 물어보는데 어느 쌍둥이 엄마가 손을 번쩍 들고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때마침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쌍둥이 엄마 왈, 왜 다른 경기도 지역에는 조부모가 손자를 봐주면 수당이 나오는데 부천에는 없냐고, 아주 호의적이고 다정한 말투로 시장님의 허점을 찔렀다. 시장님은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부천의 이런저런 돌봄과 복지 혜택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뒤이어 어느 어르신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뇌경색 때문에 쓰러졌지만 부천의 커뮤니티 프로그램들 덕분에 사회활동을 재기하고 책을 2,500권이나 읽으셨다며, 부천에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셨다. 시장님은 흐뭇해하며 부천에는 도서관이 백 개나 있다고 자랑했다.


그렇게 오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뭔가 내 외지인 마인드에 빗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로컬리티커뮤니티 같은 추상적 단어가 옆에 이웃들의 모습으로 몸을 만들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로컬, 지역, 이웃, 공동체는 내가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안으로 여기는 좋아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직업상의 관찰 대상이었을지언정 내가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경험은 거의 해본 바가 없었다. 항상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익명3쯤 되는 입장으로 살아온 것이다.


비 온 날 저녁, 싱동도서관


원대한 계획


그러다 작년, 회사와 출퇴근이 가까운 외곽 도시를 찾다가 부천에 이사 왔고, 수많은 시립도서관이 곳곳에 정말 잘 자리 잡고 지역 공동체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침 올해 다큐멘터리 기획을 하게 되어서 책을 많이 볼 기회와 여유가 생겼다. 수시로 곳곳의 도서관에 드나들며 지역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 호기심이 생겨 이 강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도시는 편의와 재미를 주지만 밀도가 높다. 사람들을 더 자주 오래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타인에 대한 불신이나 공포는 삶을 불안하고 메마르게 만든다. 모르는 타인들은 좀 두렵고 못 믿겠다는 감정. 대한민국은 그런 불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나를 포함 빽빽한 건물에 들어차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이런 마음일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커뮤니티 행사에서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니 뭔가 마음이 온천욕을 한 것처럼 긴장이 풀리고 노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저런 부천의 커뮤니티 행사에 시간이 되는대로 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소소하게 이웃들을 마주할 수 있는 책모임 등의 기회를 스스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반이나 지났지만 이루고 싶은 원대한 계획이 하나 늘었다. ☀︎




한 주를 시작하며 쓰는 약을 처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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