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09
미켈란젤로 (1475 ~ 1564)
화가 보다 조각가로, 그 반대로도 칭송받는 르네상스의 거장이다. 다비드 상과 천지창조라는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거대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으며, 보는 즉시 압도된다. 그의 작품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유다.
나는 다비드 상을 2022년 가족과 유럽 여행 중 직접 관람했다. 다비드 상은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 오른손에는 조약돌을 든 채, 응시하는 눈빛을 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중 하나다.
미켈란젤로는 6살 때 어머니가 죽자, 시골에 있는 유모의 집에 맡겨졌다고 한다. 당시 유모의 남편은 석공이었는데, 미켈란젤로는 어릴 때부터 조각용 끌과 망치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몰락한 귀족 출신이어서 그가 번듯한 직업을 가지기 원했지만, 그는 예술을 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의 허락을 겨우 받고, 기를란다요 화방에 제자로 들어갔다.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한 그는 1년 만에 뛰쳐나왔다. 그는 자신이 너무 뛰어났고, 그림보다는 조각에 흥미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로렌초 데 메디치는 그를 초대해, 15살 때부터 자기 집안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젊은 예술가들을 많이 지원했던 메디치 덕분에, 그는 조각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메디치 가문 사람들과 식사도 하고,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로부터 플라톤 철학과 문학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스폰서였던 로렌초가 죽자, 그의 아들은 미켈란젤로의 위대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메디치 집안에서 나왔다.
그는 24살에 피에타로 순식간에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작품은 유명해졌는데 작가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자, 성당에 몰래 들어가 성모 마리아 대각선 옷깃에 ‘피렌체의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고 조각해 버렸다.
이후 미켈란젤로는 창조주는 당신의 작품 어디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는데, 자신이 조각품에 오만하게 이름을 써넣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다비드 상은 5.17m의 웅장한 조작품이다. 현재 피렌체의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서 전시되고 있다. 수많은 조각품들과 같이 전시되어 있지만, 다비드 상은 가장 웅장하고 멋지다. 이 작품을 위한 대리석은, 1464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3년간 밤낮없이 작품에 매달려, 1504년 무게 6톤의 다비드 상을 완성시켰다. 한 평론가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본 사람이라면, 그 어떤 다른 조각가의 작품도 볼 필요가 없다.”라고 극찬했다.
정작 그가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 때문이었는데, 이 작품은 메디치를 무찌른 피렌체 공국에서 의뢰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작품 완성 후 미켈란젤로는 교황청에 숨어 지냈다고 한다.
이후 메디치 가문의 복귀로 다비드 상 파괴 논란까지 있었지만, 메디치 가문에서 다비드 상을 인정했다. 메디치 가문은 미켈란젤로에게 새로운 작품을 발주했다고 전해진다.
다비드의 머리와 오른손이 정면에서 보면 비율적으로 크게 보이는데, 그것은 조각상 아래에서 볼 때는 정상비율로 보이도록 조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빙 둘러서 사진을 찍는 내내, 다비드상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스티나 천장화인 천지창조는, 그가 4년간 천장에 매달려 완성한 불세출의 작품이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이 천정화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했다. 4m * 14m의 이 거대한 그림을 발주했던 사람은 율리오 2세 교황인데, 그는 원래 12 사도상을 그려달라고 했다.
미켈란젤로가 볼 때 12 사도상을 그리기에는 너무 큰 면적이라, 자신이 천지창조부터 모세까지의 성경 이야기로 아예 바꿨다. 교황이 그것을 수용할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가 남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한 번은 교황이 완성기일을 독촉하자, 오히려 미켈란젤로가 핀잔을 주었다. 교황이 화가 나 지팡이로 때리자, 그는 바로 피렌체로 돌아갔다. 부랴부랴 교황의 대사가 설득해, 어렵게 다시 모셔왔다고 한다.
시스티나 경당에 있는 최후의 심판(14m * 12m)도, 천정화 못지않게 유명한 작품이다. 원래 하나님이 나체로 표현되어 있었는데, 그의 제자가 옷을 입혀 수정했다.
레오나르도에 비해 외모가 빈약했지만, 예술가적 실력과 열정은 당대 최고였다. 레오나르도가 “조각가는 밀가루를 뒤집어쓴 제빵사”라고 폄하할 때, 그는 “조각은 회화를 닮을수록 보잘것 없어지고, 회화가 조각을 만났을 때는 완전 해진다.”라고 받아쳤다.
르네상스 3대 예술가중 그는 88세까지 가장 오래 살았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다비드 상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다비드 상은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