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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Aug 02. 2024

내만사 - 잭 웰치

경영자 31

잭 웰치 (1935 ~ 2020)

GE에서 20년간 CEO로 지내며, CEO의 교범으로 불렸던 그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그의 업적들이 Challenge 받기도 한다. 에디슨의 GE도 현재는 힘이 많이 빠졌다. 크로톤빌의 GE 맨들이여, 다시 한번 깨어나라!




잭 웰치는 역대 기업 CEO 가운데서, 첫 번째 내지는 두 번째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가 20년간(1981~2000년) 회장 및 CEO로 재임했던 곳은, 에디슨이 1878년에 창업했던 GE다.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이름을 날린 GE였지만, 한 세기를 지나면서 성장의 동력도 떨어졌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도 미약해지고 있었다. 45세의 GE 역대 최연소로 지휘봉을 잡게 된 웰치는, 경영학의 모든 실험과 과감한 리더십으로 GE를 변화시켜 나갔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매출은 5배, 시가총액은 무려 34배나 성장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구조조정 할 때는 5년 동안 무려 11만명이 GE를 떠났다. 글로벌 No.1 또는 No.2가 아닌 사업들은 모두 접었다. 그는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중성자탄이란 건물의 골격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사람만 제거하는 폭탄이다.


그는 워크아웃, 벽 없는 조직, 6 시그마 등 현대 경영학자들이 열광하는 경영기법을 선도적으로 도입했고, 혁신적인 성과를 낸 CEO였다. 그의 리더십으로 GE는 환골탈태했다.


M&A 등 급격한 사업구조 변화 등으로 그가 퇴임 후 GE가 경영에서 어려움에 처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영자들이 변하는 경영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의사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본다면, 그의 퇴임 후 경영진들의 이슈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웰치는 철도 검표원인 아버지, 자녀들 훈육에 열정을 가졌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매일 열차 안에 버려진 신문들을 집에 가져왔고, 웰치는 어린 시절부터 신문을 보면서 정보를 캐치하고 분석하는데 익숙해졌다고 한다.


어릴 적 축구경기에서 친구가 실수로 게임에 졌다고 그가 분을 참지 못하자, 어머니는 실패를 수긍하지 못하면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며 그를 나무랐다.


그는 GE플라스틱에 이학 박사로 입사한 뒤, 소신 발언과 남다른 착안과 성과로 GE의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20년간 경영의 신, 월 스트리트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리던 그는 후임 CEO에 이멜트를 지명하고 은퇴했다.


GE는 우리나라와 같은 오너 경영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CEO 승계과정을 중요시했다. GE에는 ‘크로톤빌’이라는 리더십 개발센터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그룹 인력개발원 내지는 연수원과 같은 곳이다.


1950년대 랄프 코너 前 회장이 경영을 분권화하면서 관리자들에게 자율과 동시에,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만들었다. 미국의 최초 기업 사내대학으로 불렸던 GE 크로톤빌은, CEO 사관학교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현직 CEO들은 이곳에서 임원 리더십 교육과정에 참석해, 솔직한 대화를 통해 GE의 미래 최고 경영자를 지도했다. 현직 CEO뿐만 아니라 이곳의 강사로 지명된다는 것은 GE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멜트도 웰치와 이곳에서 만났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다. 개인의 실적과 평판도 중요하지만, 교육시스템을 통해 검증된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GE는 지난 70년 동안 이렇게 실천하고 있다.


내가 근무했던 삼은, 일본기업과 미국기업의 좋은 점을 잘 결합해 사업과 경영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업적인 측면과 제조업에 대한 장인정신은 일본 산요를 통해, 반도체의 노하우와 미래성장의 틀을 배웠다.


미국 GE를 통해서는 선진화된 인재양성과 전문 CEO 양성, 승계절차 등 경영 노하우를 배웠다. 과거 이멜트 회장의 초청으로, 삼성에서도 크로톤빌을 벤치마킹했다.


1997년 IMF가 우리나라를 덮쳤다. 나는 회사의 T/F멤버로 선발되어 사업 및 인력 구조조정, 경비절감, 스핀오프, 자산매각 등 전반적인 다운사이징 작업에 들어갔다. 원칙과 우선순위를 정하고, 전체 로드맵과 개별 사안들의 실행방안을 도출했다.


이 작업을 수행하면서 잭 웰치의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왜 우리 회사가 지금 이 작업을 해야만 하는지(IMF 당시에는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사실상 해당), 그리고 작업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 참고했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했지만, 실제 실행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다운사이징은 회사의 가장 약한 지점을 드러내야만 사내 공감대가 형성되고, 실천의 고통을 통해서만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당시 삼성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회사 스탭부서의 명칭이 살벌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할 때 ‘본사 관리팀’에 배치받았다. IMF 시기에는 ‘구조개혁팀’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내가 그룹에 파견되었을 때 비서실은 ‘구조조정본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나는 ‘구조조정팀’ 소속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구조조정본부가 미래전략실로 명칭이 바뀌었다. IMF 이후 삼성은 구조조정, 구조개혁이라는 살벌한 명칭을 오랫동안 사용했다. 웰치가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참 궁금하다.


10~20년 정도 세월이 흐르면, 회사의 주력 사업도 서서히 변한다. 삼성전자도 가전에서 반도체, 모바일 등으로 실적이 요동치면서 주력사업들이 변해왔다. 경영자원의 투입도 사업의 성장에 비례해 변경되었다.


삼성전자는 그룹 전자계열사와 함께, 2010년 전후로 사업을 합쳤다가 분리하기도 했다. 몇 개의 사업은 당시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에 매각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Top Tier 기업도 지난 십 수년을 돌아보면, 크고 작은 사업 구조조정을 했다. 기업이 신사업을 찾고, 성장동력이 떨어진 것을 구조조정 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경영이란 것이 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의사결정이라고 본다면, 관료적인 조직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결단했던 웰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웰치는 GE를 이끌었던 지난 20년간 행복했을까? 아니면 은퇴 후 10여 년간 강연과 경영자문을 할 때가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는데, 둘 중 어떤 기간이 그에게 더 보람이 있었을까?


웰치가 남긴 경영방식과 리더십은, 아직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Thank you, 잭 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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