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ence
비서실 & 수요회 - Essence
삼성의 그룹 조직(비서실)은 나와 떼어놓을 수 없다. 나는 삼성에서 근무했던 28년 중, 10년을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우리나라 각 그룹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비서실과 같은 조직은 대부분 존재한다. 삼성도 시대에 따라, 그 명칭은 바뀌었다. 처음에는 비서실이었지만, IMF 때 구조조정본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삼성 특검 때는 업무지원팀으로 바뀌는 등 위상도 위축되었다. 2010년 말에는 미래전략실로 재 탄생되었다가, 최순실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전자, 금융, 건설 3개 T/F그룹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비서실의 명칭 변화만 봐도, 그룹의 굴곡이 읽힌다.
나는 2000년 1월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에 입실해, 7년간 간부로 근무했다. 2010년말 미래전략실이 다시 생길 때, 전략 2팀에서 임원으로 3년간 근무했다. 비서실 초창기에는 물산이 모태기업이다 보니, 물산 선배들이 비서실에 많이 포진되었다고 들었다. 내가 입실할 때만 해도 전자, 생명 등에서 파견된 간부와 임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회사의 위상이 비서실 인적구성에도 반영되었다.
나는 다양한 회사들의 운영업무를 담당했다. 물산 출신이다 보니 상사와 건설, 엔지니어링은 기본이었고 화학사를 많이 담당했다. 당시 화학사의 위상은 미미했다. 게다가 석유화학과 비피화학은 합작사였다. 종합화학은 설립 후 지속된 적자에 따라, 정부에서 지정한 빅딜업종으로 분류되었다. 결국, 외자유치를 추진했고 외자기업이 되었다. 정밀화학은 과거 정부에 헌납되었다가 그룹이 재 인수했지만, 비료사업의 틀을 벗어나는 데 애로가 많았다.
담당하는 회사의 개수가 많다 보니, 나는 다른 담당자들에 비해 리포트 작성이 많았다. 아무리 조그마한 회사라도, 챙겨야 할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영담당 회사의 자료 작성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의 집계도 해야만 했다. 나는 업무를 원활히 하기 위해 양식화, 자료요청, 자료작성, 피드백 등 멀티태스킹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칼 같이 업무를 챙기다 보니, 사람들의 인심도 조금씩 잃었다.
4년 정도 회사운영 중심으로 일을 하다가, 재무팀 총괄파트의 총괄 부장이 되었다. 이 자리는 구조본을 통틀어 권력(?)을 누리던 자리다. 그룹 전체 자료 취합, 계수(경영계획/실적관리), 업적평가 및 보상 업무를 담당했다. 이 시기에 수요회 업무도 담당했다.
수요회는 매주 수요일 그룹 사장단, 그리고 비서실 팀장들이 외부강연을 듣고 그룹의 주요 공지사항을 공유했다. 나는 실무 코디네이터로 외부강사 섭외, 강연 어젠다를 관리했다. 경제연구소나 기획팀의 협조를 받아, 강사 롱 리스트를 좁혀가는 형태로 강사들을 섭외했다. 수요회는 오래전에 없어졌고, 이제는 없다.
3년 동안 100여 명을 강사로 모셨던 것 같은 데, 주로 교수들이 많이 초대되었다. 수요회 자체가 사장단들의 지적 외연을 넓혀드리고, 최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사차량으로 아침에 픽업해 모셨는데, 한 번 강사가 늦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준비하고 점검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수요회 전날에는 항상 금주했다. 강사들의 삼성에 대한 첫 이미지는 나와의 대면에서 시작되는데, 술냄새를 풍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서실에 근무할 때는, 개인의 저녁시간이 거의 없었다. 근무 강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긴급 오더가 언제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회사와 일정 부분 거리를 두어야 하는, 업무 특수성도 한몫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곳은 모두가 근무하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회사에 복귀해 나와 같이 일했던 후배 간부들과 그런 상황에 직면할 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도 했다. 힘과 권위라는 것은, 개인이 똑똑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룹과 회사 상호 간의 고유의 기능은, 원심력과 구심력 측면에서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서실 근무는 이제 기억 속의 이야기들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 뜨거운 무언가를 느낀다. 그때의 열정을, 앞으로도 잘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