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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Sep 24. 2024

내만사(부록) - 1980년대

20년 배움의 과정 졸업

1980년대 - 20년 배움의 과정 졸업


미국과 소련 냉전의 절정기였다. 소련 공산체제(1991년)와 동독(1989년)이 무너지면서, 자본주의 열풍이 불었다.  로널드 레이건(마국), 마거릿 대처(영국), 미하일 고르바초프(소련), 프랑수아 미테랑(프랑스), 헬무트 콜(독일) 등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이 서양에 등장했다.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권이 막을 열었다.


세계 경제가 전체적으로 호황이었다.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기는 1990년대, 석유 파동을 겪었던 1970년대와 달리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좀 더 밝았던 1980년대였다. 이 시기는 댄스 록이 주류였다. 듀란듀란, 마이클 잭슨, 마돈나, 프린스, 웸 등 포스트 디스코의 선두주자들이 댄스 록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전두환(1980~1988), 노태우 대통령(1988~1993) 시기였다. 당시 정치적인 비극 때문에, 대학교에는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당구장, 만화방, 하숙집에서 청춘의 낭만을 즐기던 대학생도 많았다.


1980년 프로축구,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되었다. 1970년대까지 인기를 끌던 레슬링과 권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이 열렸다.


짜장면, 양념치킨, 떡볶이, 돈가스가 대중 음식이었다. 경제성장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만화방이 증가했다. 조용필, 전영록의 노래가 인기 있었다.


영화 ‘깊고 푸른 밤’이 흥행에 성공했고, 외화 ‘킬링필드’는 관객 1백만명을 돌파했다. 명절 선물에는 넥타이, 지갑, 벨트 등 고가의 제품들이 인기 있었다. 상품권과 양주 등도 인기가 있어 3저 호황기의 소비 패턴을 엿볼 수 있다. 반도체 엔지니어, 통역사 등이 인기 직업이었다.


나는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마지막 세대다. 나는 서울에 입성했다. 신림동 서점에는 운동권 책 아니면, 법률 서적밖에 없었다. 맥주 집 보다 막걸리 집이 많았고, 거리에는 막걸리의 눅눅한 냄새가 자욱했다. 

학부/석사를 마치고, 석사장교 6개월 과정에 입대했다. 나는 20년 동안 긴 배움의 과정을 모두 마쳤다.


서울 진출, 배움의 마무리, 짧았던 군대생활 등이 내 세 번째 Decade의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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