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사 - 빈센트 반 고흐

미술가 01

by 구포국수

빈센트 반 고흐 (1853 ~ 1890)

파리에서 철저한 고독감을 느끼고, 아를에 홀로 가야만 했다. 그는 평생 동안 힘들게 살았다. 만일 테오가 없었다면, 그의 미술작품은 모두 불태워 없어졌을 것이다. 테오에게 보낸 서한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도슨트의 멘트였다.




후기 인상파 화가인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목사인 아버지, 그림을 파는 큰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어머니는 고흐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권했지만, 그는 종교와 그림의 경계선에서 방황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오가며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그의 성격과 어릴 적부터 정신적인 장애로 어느 쪽에서도 두각을 내지 못했다.


큰 아버지의 주선으로 헤이그와 런던의 화랑에 근무하면서 화상의 길을 갈 뻔했지만, 손님들과 마찰로 그 일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기 위한 길을 걸었지만, 목사 시험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동생 테오가 당시 파리에 유행하던 인상주의를 고흐에게 알려주었고, 파리에 형을 초청했다. 테오는 고흐가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게 해 주었고, 고흐가 화가의 길을 가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유럽에는 일본의 우키요에라는 일본 목판 채색화가 소개되며, 자포니즘(Japonism) 열풍이 불고 있었다.


우키요에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된 일본 도자기가 항해 중 깨지지 않도록, 포장지 역할로 유럽에 들어왔다. 파리의 화가들은 우연히 이 그림을 발견하고 열광했다. 고흐의 작품 속에서도 일본의 흔적, 우키요에가 많이 발견된다. 그가 생전에 일본에 가고 싶어 했다는 것도 기록에서 확인된다.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고 작품 활동 중, 그는 프랑스 남부 아를에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괴팍한 그의 성격과 독주인 압생트에 빠져,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그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갱이 아를에 온 지 두 달 만에 고흐는 발작을 일으켰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 테오는 고흐를 아를에서 생레미로 옮겼다. 그 이후 오베르 쉬아즈라는 풍광이 좋은 곳으로 그를 다시 옮겼지만, 그는 권총으로 자살했다.


생전에 고흐는 화가로서 실패했던 인물이다. 살아있을 때 단 한 점의 그림만이 팔렸고, 그가 죽고 15년이 지나서야 재평가되었다. 현대 미술가 중에서 가장 비싼 값에, 그의 작품들이 현재 거래되고 있다. 그는 평생 동안 동생 테오에게서 물감, 미술도구 비용과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그는 작품이 완성되면, 테오에게 꼭 보내 주었다. 그림과 함께 작품을 설명한 편지를 보냈고, 테오도 답장을 했다. 정신질환을 가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형의 창작활동을, 테오는 그렇게 묵묵히 지원했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두 사람은 고흐가 죽고, 6개월 뒤에 테오도 죽었다. 형제의 무덤은 현재 나란히 옆에 놓여 있다.


고흐를 이야기할 때, 동생 테오 부부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테오는 고흐가 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도록 모든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그의 작품을 높게 평가했다. 테오의 부인 요한나는 고흐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그의 사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남편과 친분이 있던 미술계 인물들에게 고흐의 작품을 소개하고, 전시하면서 고흐가 거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고흐가 남긴 600여 통의 편지도 책으로 출간했다. 테오의 부인은 고흐와 남편의 사망 후 고흐의 작품을 널리 알렸고, 그 결실을 맺었다.


압생트, 정신적인 장애, 괴팍한 성격으로 파리 화단에서 외면당했던 불쌍한 영혼 고흐. 결국, 그는 죽어야만 진가를 보일 수 있는 팔자였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흐와 관련된 이야기를 책, 강연, 영화 등을 통해 깊게 알게 되면서 마음 아파했다.


현대 미술가중 고흐만큼, 철저하게 아웃 사이드로 살다가 죽은 화가도 없다. 귀가 잘린 자화상, 퀭한 그의 눈빛 그리고 노란색과 푸른색의 붓 터치는 그의 정신세계를 보는 듯하다. 미친 듯한 색깔이면서도, 따뜻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람은 고흐가 유일했다.


외롭고 비참한 생을 살아가고 있더라도 그를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는 테오가 있었기에, 그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 세계가, 사람들로부터 이해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반미치광이 고흐. 작품뿐만 아니라 테오와의 스토리, 화단에서의 왕따, 압생트, 정신적인 결함, 그 모든 것들이 슬프다.


고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순간 아무리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더라도 자신이 꼭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이다. 지난한 몸사위로 흔적을 남긴다면, 자신과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뿌듯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고흐의 작품 가운데, ‘아를 포룸광장의 카페테라스’를 좋아한다. 테오에게 쓴 편지에 이 작품을 이렇게 묘사했다. “푸은 밤,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 만치 옅은 하얀빛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은 정말 즐거웠어.”


반미치광이 고흐가 이렇게 생생한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체념하지 않았고, 동생에게 이 편지를 전했던 것 같다. 훗날 자신의 그림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감상해 달라는 가이드북과 같은 글들을 남겼다.


그는 47년간 이 세상에서 철저히 아웃 사이드로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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