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01
스티브 잡스 (1955 ~ 2011)
불꽃같은 영감, 악마와 같은 집요함, 완벽에 대한 강박증, 그는 애플의 심장이며 영혼이다. 터틀넥과 뉴발란스 신발을 신고 신제품 발표 무대에 오를 때,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은 안경너머 그는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Stay hungry, stay foolish.” 이 말은 배고픔을 유지하라, 그리고 어리석음을 유지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의역한다면, 계속 갈망하라(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그리고 겸손하게 더 배워라. 2005년 스티브 잡스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 이 말을 인용해 널리 알려졌다.
항상 배움에 대한 열정을 유지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던 자신의 삶을 이 말에 담아 전했다. 그는 6년 뒤 애플과 애플정신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작은 안경알 너머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그는 디자인과 심플을 지향했고, 기존에 없던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이 시대의 거인이다. 나는 그를 닮고 싶었다. 그는 사람들과 잘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고, 인생도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고집스럽고 독선적인 측면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목표지점에 대한 완벽함을 갈구했다.
공룡 IBM에 맞서 개인 PC시장에서, 애플의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 나갔다. 그는 많은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물러났다. 좌절하지 않고 컴퓨터 회사인 넥스트를 만들고,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를 만들며 재기를 노렸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으로 픽사를 디즈니에게 매각했고, 디즈니의 2대 주주 및 이사회 멤버에 이름을 올렸다.
중산층 가정에 입양되었던 잡스는,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동네 형이었던 워즈니악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는 워즈니악을 만나면서 전자제품과 부품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양부모의 경제적 부담감을 걱정해 대학을 중퇴했으나, 캘리 그래피(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 만은 청강생으로 계속 들었다고 한다. 대학을 관두면서도, 훗날 애플의 밑천만큼은 무임승차해 고스란히 챙긴 셈이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것이 1997년인데, 당시 애플의 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는 1992년 애플에 입사 후 맥 컴퓨터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었다. 아이브는 디자인에 문외한 경영진들과 잦은 불화를 겪다가,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잡스가 복귀할 때 외부 디자이너 채용을 염두에 두었는데, 아이브를 만나고서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심플하면서도 독특한 애플 디자인 트레이드 드레스를 만들게 된다. 아이브의 애플 디자인과 관련한 혁신활동은 2011년 잡스 사후에도 계속되었다. 2019년 아이브가 애플을 나온 뒤에도 PJT별로 컨설팅하며, 지속 관여했다.
잡스 사후에는 팀 쿡이라는 SCM 전문가가 CEO에 취임해 10년 이상 애플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신발의 나이키처럼 애플은 R&D/디자인/마케팅/판매기능을 직접 수행하고, 제조는 100% 아웃소싱 하고 있다.
맥 컴퓨터부터 아이팟, 아이패드, 아이폰까지 제품라인이 확대됨에 따라 글로벌 제조역량과 부품조달이 중요하게 된다. 이때 팀 쿡이 SCM 분야에서 역량을 크게 발휘했다. 팀 쿡은 컴팩과 IBM에서 PC 사업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1998년 잡스가 스카우트해 애플에 들어왔다.
그는 당시 애플의 100여 개 부품 공급회사를 20개로 줄이고, 생산공장도 가깝게 배치해 재고일수를 줄여 획기적인 원가절감을 달성했다. 이후 그는 SCM 이외 분야에서도 성과를 올리며, 2004년과 2009년 잡스가 병가를 내었을 때 임시 CEO를 맡는 등 실질적인 2인자가 되었다. 2011년 잡스가 죽자, 그는 애플의 CEO에 올랐다.
잡스가 맥 컴퓨터, 아이팟, 아이패드, 아이폰에서 애플의 토대를 다졌다면, 팀 쿡은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애플을 독보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잡스는 디자인 부서를 매일 들락거리며 제품개발 과정을 점검했지만, 팀 쿡은 디자인 부서를 거의 방문하지 않았다.
잡스가 꿈과 비전을 가진 이상주의자라면, 팀 쿡은 이윤에 집착하는 현실주의자였다. 팀 쿡이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잡스가 경영의 상당 부분을 COO였던 팀 쿡에게 이미 오랫동안 위임했기 때문이다. 잡스의 아이폰 같은 혁신제품을 내지 못했다고 팀 쿡에 챌린지 할 수 있지만, 그도 애플 와치, 애플 TV, 애플 AI 등에서 성과를 냈다.
애플의 성공 신화는 잡스와 워즈니악의 Garage Culture에서 시작했고, 디자인의 아이브, SCM의 팀 쿡 등 4명이 만들었다. 그리고, 글로벌 전자제품 ODM기업인 대만의 폭스콘도 빼놓을 수 없다.
2007년 가을 나는 금융팀장으로 뉴욕에 IR출장을 갔다. 당시 글로벌 증권회사 직원과 함께 맨해튼을 걸을 때, 그는 아이폰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마술처럼 조작했다. 아이폰은 그해 미국에서 첫 출시되었다. 2010년 내가 미주본사 CFO로 부임했을 때, 삼성전자는 아이폰 대항제품 개발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 미국의 금융 맨들에게 캐나다 블랙베리 핸드폰이 대세였다. 아이폰 등장 후 블랙베리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리고, 당시 휴대폰 글로벌 1위 기업 노키아는 불타는 플랫폼이 되고 말았다.
최고라고 각광받던 제품과 기업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혁신제품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잡스, 아이브, 팀 쿡, 그리고 애플의 혁신 인재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삼성에 그룹조직이 다시 생기면서, 나의 미국 주재생활은 1년을 못 채우고 짧게 끝났다. 나는 한국에서 2011년 스티브 잡스의 부고를, 중앙일보 인터넷 영문판으로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 출력했던 그의 사진과 부고 기사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와는 단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경쟁사 제품이어서 아이폰을 사용해 본 적도 없었지만 슬펐다. 여전히 만족하지 않는 듯한 그의 눈빛은, 지금도 나의 나태함을 꾸짖는 듯하다.
그는 애플의 지휘봉을 다시 잡고 놀라운 i시리즈를 선보였다. 처음은 아이팟이었는데, 왜 이 제품이었는지 다소 의외였다. 당시 MP3는 이미 한국에서 개발되었던 제품이고, 아이리버 같은 뛰어난 업체들이 우리나라에 있었다.
잡스의 필살기는 아이팟 자체가 아니라, 아이팟의 생태계인 아이튠즈였다. 아이팟 생태계인 ‘아이튠즈’, 아이폰의 ‘앱스토어’는 기업이 어떻게 관련 업체들과 네트워킹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이며, 멋진 비즈니스 모델이다.
청바지에 터틀넥, 뉴 밸런스를 신고 프레젠테이션하는 그의 모습은 이제 유튜브에서나 볼 수 있다. 그의 멋진 PT 장면들은 더욱 그를 그립게 만든다. 그는 아직도 나에게 “Stay hungry, stay foolish.”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