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에서 로켓까지
종합무역상사 – 바늘에서 로켓까지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반적으로 한 개의 업종만을 경험하는데, 나는 다양한 산업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입사한 곳은 종합상사인데, 이곳의 매출규모와 품목의 다양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1990년 중반 이후 국내 제조업체들의 해외공장 건설과 직마케팅,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종합상사의 위상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래도 주요 사업(품목)의 글로벌 B2B 플레이어로서의 입지는 아직 살아있다.
종합상사는 일본과 우리나라 밖에 없는 사업모델이다. 종합상사는 철강, 화학, 자원, 생활문화, 정보통신, 기계플랜트 등의 각종 품목(완제품, 원재료)들을 수출, 수입, 삼국간 거래를 業으로 한다. 상사는 해당 품목의 공급자와 수요자의 간극(거리, 규모, 시간)을 이용해, 사업적인 기회를 활용한다. 금융능력, 재고부담, 글로벌 네트워크, 신용도 등의 상사 특유의 강점을 보태어 거래의 부가가치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트레이딩은 거간꾼 역할이어서, 제조업의 글로벌화에 따라 상사의 마진은 기본적으로 줄어들었다. 마진이 적어서 환율이나 기타 돌발 리스크 요인이 일어날 경우에는, 적자가 될 가능성도 크다. 해외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 높은 고정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이래저래 상사의 마진은 낮고, 제대로 변신하지 못한다면 ‘Out of date’ 비즈니스로 전락할 수 있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빙하기를 거치고 재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자원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그 투자가 고유가 시기, IT산업 호황기와 맞물리고 희토류 산업 등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가능했다. 국내 종합상사들도 일본을 따라 했지만 자금력, 해당 자원사업에 대한 업력 부족 등으로 손실이 많았다. 한편, 국내상사는 해외 특정지역에 공장(ex, 코일센터)을 인수 및 운영하는 방식도 활용했다. 해외 현지판매와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부가 제조 인프라투자를 통해 구매, 생산, 판매의 일관체제 등 해당품목의 밸류 체인을 넓혀갔다.
상사는 일반 제조업체 보다, 신사업에 빠르게 진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룹에서 일종의 Test-bed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벤처 붐이 있었을 때 벤처 캐피털의 역할,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신에너지 붐일 때 관련 밸류 체인 참여자들을 오거나이징 할 수 있다. 나는 상사 비즈니스를 지켜보면서, 신촌지역의 가게들이 변신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신촌지역의 임대빌딩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오락실, 스트레스 해소방, 미로 찾기, 커피 전문점 등 끊임없이 변신해 왔다. 이런 가게들의 생존방식, 상사의 생존 전략이 비슷하다고 비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