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다 깊은 3-1

부서진 자리에서 피어난 사랑

by 권창현

나는 어느 날,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흉터로 시작된 삶,

상처로 얼룩진 기억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나 역시 귀한 존재임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짐했을 때,

나는 누군가와 인생을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나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MK 캠프를 섬기고 있었다.

짧은 여름과 겨울,

누군가의 아픔을 품고 함께 걷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캠프를 준비할 때마다 새로운 스태프를 모집했고,

신입 스태프들과는 오리엔테이션 겸 1대 1 식사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다.


처음 본 순간,

화려한 모습도, 과장된 인상도 없었다.

그저 맑고 순수한 눈빛, 담백한 웃음.

“세상에,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정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다른 관계 속에 있었다.

마음 한편에 스친 감정은 조용히 접어두어야 했다.


시간은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 찾아왔다.


우리 집에서 6개월간 함께 지내던 MK 친구가 있었다.

선교사 자녀로서, 밝은 모습 뒤에 깊은 고통을 안고 있던 아이였다.

그 친구는 내 생일이었던 3월 28일,

책상 위에 짧은 쪽지 한 장을 남긴 채 집을 떠났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그날부터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냈다.


전화기를 붙잡고,

문 앞을 바라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했다.


하지만 정확히 한 달 후,

마포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나는 신원 확인을 위해 출석해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


그때부터 나는 무너졌다.


죄책감, 무력감, 자괴감.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도리어 누군가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상처로 변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하나님께 화가 났고,

삶 자체에 등을 돌리고 싶었다.


1년 가까운 방황의 시간.

그 혼란의 시간 속에서,

나는 조용히 기존의 관계도 정리했다.

누구의 탓도 아닌,

스스로를 제대로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 선택은 아픔을 남겼지만,

필요했던 과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정신 차려야 해요.”


그 말은 부드럽지도, 위로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귓가를 때린 유일한 진실이었다.

듣고 싶었던 달콤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들어야만 했던 말.

그녀는 내 곁을 지키던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정확한 말을 해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었다.


‘이런 나라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구나.’

‘하나님께서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조용히 그렇게 믿게 해 주었다.


오랜 시간 조심스럽게 마음을 다가갔고,

나중에는 내가 구애를 시작했다.

긴 기다림 끝에,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그해 겨울,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상처로 시작된 내 삶은,

사랑으로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부서진 자리에도 사랑을 심어주셨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했다.




다음 이야기:


우리가 함께 세워간 가정,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걷게 된 또 다른 싸움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