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할일들을 잔뜩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첫번째 행선지인 병원,
오늘도 원장님은 5분 늦게 출근을 하시고 ..원장님이 병원에 들어서는것을 보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병원에 들어섰다.
'훅......' 병원문을 열자 사람냄새가 쏟아진다. 오늘도 마음이 아픈사람은 많은가보다.
접수를 하려는데 데스크에서 한 젊은 여자가 접수원과 싸우고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젊은여자는 진료를 받기위해 9시 15분에 도착해 2번 대기표를 받았는데, 3번 대기표 할머니가 출근이 너무 급하다고 사정을 해 먼저 진료를 본 요량이었다. 젋은여성이 순서대로 두번째로 진료를 받았다면 아무일도 없었겠지만, 1번대기표를 받은 사람이 두번째로 진료를 받고 젊은여자는 세번째로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이 불공정한 상황을 참을수 없다며 데스크 직원을 쥐잡듯이 잡고 있었다.
3번 대기표를 받았으나 1번으로 진료를 받은 할머니는 연신 나 때문이라고 사과를 하며 싸움을 중재하더니, 병원을 나서는 길, 자동문이 채 닫히기 전에 "별나기는...제기랄."이라고 나지막히 내뱉어 버렸고 이소리를 들은 젊은여자는 화를 참치 못하고 병원 한가운데서 퍼포먼스를 하듯이 화를 내고 말았다. 그녀의 화내는 모습은 나에게 슬로우모션을 걸어놓은 것 처럼 느리게 보였고 그 모습이 뮤지컬의 한 장면같아 집중해서 보고 말았다.
종종 하는 생각이지만 이 병원에는 화를 밖으로 내 뱉는 사람과, 화가 나지만 그 화를 감추기 위해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 두 부류로 환자가 나뉘는것 같다.(이 병원에서는 유난히 따지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지나치게 친절하려 노력했던 할머니는 결국 자신의 화를 들키고 말았다.
가벼운 진료를 보았다.
이명과 귀에 꽂히는 각종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자 선생님께서는 늘 그렇듯이 하이톤으로 "저 그부분 너무 이해합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라고 말씀 하셨고, 예전에는 선생님의 이런 공감을 들으며 의료진과의 라뽀가 잘형성되어 좋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제는 웬지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공감에 기운이 빠졌다.
진정으로 공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침묵은 어떨까.
잠시라도 침묵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를 만나면 말이 끝나기 전에 맞장구 치며 끄덕이는 내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당신에게 공감하고 있었던가, 아니면 당신에게그럴 듯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가.
지나치게 친절하려 노력했던 할머니가 '제기랄'을 외쳤던 것처럼 어느날 나는 연신 끄덕이며 공감하다가 나도 모르게 뒤돌아서서 제기랄을 되뇌였을지도 모르겠으며,
하나도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 밝은 목소리로 " 저 그부분 너무 이해합니다. 저도 그렇거든요!"라고 상쾌하게 외치며 애써 이야기를 풀어놓은 상대방을 땅굴속으로 집어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침묵하자.
지나치게 친절할 필요도
애써 공감할 필요도 없으니
내 앞에 있는 당신의 눈을 그저 바라보며 ...
잠시 침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