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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Feb 13. 2023

중년맞이

안과검진일이 되었다.

이번에는 콘텍트렌즈를 맞추어볼까 싶어서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시간을 넉넉히 잡고 나왔다.

일곱가지의 검사를 하고 주치의 선생님의 진료실 앞에가서 앉았다.


진료실에서 내이름을 불렀고 주치의 선생님 앞에 앉았다. 이것저것 결과를 보시더니....말씀하셨다.

"다행이네요. 2년전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원추각막은 진행성질환인데...진행이 일단은 멈추어있는것 같아요. 계속 진행이 되지 않기를 바래야죠.

.

.

.

아! 본인은 운이좋다는걸 아셔야해요."


진료 말미가 되면 선생님은 종종 나에게 운이 좋은 편이라 하셨다.

'음...운이 좋은 편인가? 운이 좋다면 애초에 이런 질병 자체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맘속에 꾹꾹 밟아넣었다.  올해는 긍정적으로 살아보기로 했으니까.



렌즈실에 가니 또 다시 검사가 시작된다.

왼쪽 각막사진을 찍더니 어!라는 짧은 놀람과 함께 사진을 삑삑삑 세번이나 더 찍어본다.

'맞아요. 보고 계신 그 울퉁불퉁한 모양이 제 각막의 모양입니다. 그만 확인하셔도 돼요.' 라고 맘속으로만 이야기 했다. 올해는 정말 긍정적으로 살아볼예정이니까!


세 가지의 검사를 더 하고 나서 검안사는 나에게

"가까이 있는 것을 잘 보고 싶으세요? 아니면 멀리있는 것을 잘 보고 싶으세요?" 라고 이야기 했다.

이제는 참지 못하고 '도대체 이런 질문을 왜하는거지?' 라는 눈썹 모양을 만들자 그는 아차! 하며 친절하게 나머지 설명을 곁들였다.


"본인은 아직 느끼지 못하시겠지만 수치상으로 노안수치가 좀 있으세요. 곧 노안이 올수도 있을것 같은데....그걸 대비해서 렌즈피팅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


"아...그렇군요. 책이나 가까운 물건을 볼 때는 웬만해선 안경을 쓸것 같아요. 외출을 할 때나 운전을 할 때 주로 렌즈를 낄 예정이니 멀리보는 것을 주로 할 수 있게 피팅을 해주세요." 최대한 예의바르게, 아무렇지 않은 듯,우아하게 대답을 했다. 노안이 왔다고 호들갑떨며 당황하는 사십대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가 40대 중반에 신문보는 것이 힘들어져서 다초점렌즈라는것을 맞추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때는 우리 아빠가 엄청 늙은줄 알았다. 곧 할아버지가 되는 줄 알았다. 주치의가 만류하는 콘텍트렌즈를 예뻐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맞춘 오늘, 내가 그때의 아빠 나이에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만생각이 교차했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감을 힘들어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맘속으로 비뚤어진 생각을 했었다.

'세월이 흐르는데 도대체 몇 살까지 청춘으로 살고싶다는 것인가, 이제는 받아들일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시니컬한 마음으로,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기억력이 약해진것 같다, 피부가 쳐진다...' 타령처럼 이어지는 부모님의 신세 한탄을 한귀로 들으며 한귀로 흘렸다.


막상 내가 이제 중년이 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난다. 무섭고 속상하다.

지금도 썩 맘에 들지 않는 피부가 더 쳐진다고 생각하니, 원래도 많지 않은 머리숱이 적어질것이라 상상하니, 지금의 몇배는 운동해야 근육이라는게 생겨 몸이 오그라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 겁이난다.

세월을 받아들이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현자들의 몫이다. 난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다.



중년이다. 병원에서 공인받은 중년이다.

어쨌든, 일단 '진짜'노안이 올때까지는 렌즈를 신나게 쓰기로 했다. 정말 강력한 노안이 와서 렌즈마저 쓸수 없는 나이가 되면 안경 때문에 예쁘게 화장을 해도 소용이 없을테니. 그때까지는 맘껏 꾸미고 아름답게 살리라.


그리고 더 많은 책을 보고,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 좋지 않은 성격이라, 돋보기를 쓰고 책을 보다간 머리가 아파서 욕을하며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철학자나  연구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 깊은 연구성과자료를 낸다지만 오늘의 나를 생각하면 앞으로 시간이 흐른후에 더  현명하거나 지혜로워질지 의문스럽다.


근육운동도 쉬지 않아야겠다. 탄탄한 등근육까지는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근육은 바른자세를 도와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50대가 되었을 때 나는 오늘의 나를 얼마나 애송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라볼까 싶다.  대단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잡생각을 줄이고 오늘을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술이나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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