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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Mar 23. 2023

총회룩의 시즌

 학부모총회 시즌이다.

 매년 그렇지만 맘까페에서는 이른바  '총회룩' 에 대한 문의 글이 넘쳐난다.


 올해 총회시즌에는 꽃샘추위가 찾아왔었다.

'얇은 핸드메이드 코트가 좋을까요 바바리코트가 좋을까요?'

'이 백은 너무 멋부린 티가 날까요? '

 심지어 코디컷을 찍어 사진에 번호를 매긴 후 투표에 올리는 글 까지 ...정말 다양한 글이 넘쳐난다.


 이 맘때가 되면 늘 이런글이 넘쳐났지만 올해엔 뉴스에 '총회룩'이 심심치 않게  등장해 더더욱이 3월 최고의 이슈가 된 느낌이다.




 



 아이둘을 키우고 있으니 나 또한 여러번의 총회와 학부모 상담을 갔었다.

 언젠가는 총회시즌에 날이 따뜻했었는데, 학교가는길 거리를 가득 채운 엄마들의 베이지색 바바리의 물결에 웃음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그 해에는 유난히 베이지색 바바리가 넘쳐났고, 학교를 향하는 엄마들의 걸음걸이에서  뭔가 전투를 나가는 군인들의 결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학부모가 되어 '총회'라는 것을 갈 때, 들려오는소문에 나 또한 몹시 긴장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동네 엄마들에게, '총회날에는 장롱속에 있던 온갖 명품가방들이 다 나온다더라, 그 날은 미용실 예약이 꽉 찬다더라' 별별 소문을 다 들은터였기 때문이다.


 너무 차려입자니 경직되 보이고 캐주얼하게 입고 가자니 성의 없어보이고...

이른바 '꾸안꾸'느낌을 내자니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중이었다면 평소 출근하는 복장 그대로 학교에 방문했어도 자연스레 스타일이 나겠지만, 전업인 나는 그렇지도 않았다. 매일 입고 다니는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고 가자니 후줄근해 보일 것 같았고, 친구들 결혼식때나 입는 정장을 입자니 그것도 지나치게 경직되어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사인 남편에게 요즘 총회엔 어머님들이 어떻게들입고 오시냐고 슬쩍 물어보았는데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우리는 입은 옷 색이나 간신히 구별하지 뭐를 입고 오셨는지, 무슨 가방을 들고 오셨는지 몰라.

 총회전에 교실정리 해두어야지, 1년 교육과정 설명드릴  준비해야지, 반대표 뽑아야지, 녹색어머니 뽑아야지, 급식검수 어머님 뽑아야지....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엄마들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보이겠니.

 그냥 이번 총회는 다섯분이 오셨구나...인원수 정도 기억할까? "

 

 "그래도 기억에 좀 더 남는건 경청해주시는 어머님들? 의외로 핸드폰 계속 확인하시는 분들 많으시거든. 열심히 준비한 자료들 설명하는데 계속 딴데 보시면 아무래도 기운이 빠지니깐...아마도 선생님이 일년동안 학급 운영하시면서 중요시 여기는 부분을 총회날 알려주시니깐 집중해서 이야기 듣는 태도가 제일 중요할 것 같아.


 그러고보니 반짝이는 눈으로 경청해주시는 학부모님은 기억에 남는것 같기도 하다."


 그렇군...그럼 내가 그냥 좋아하는 옷으로!

 편한한 자켓과 핏이 좋은 청바지에 단정한 스니커즈를 신고 학교를 향했다. 익숙하고 몸에 맞는 옷을 입으니 불편함이 없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아이의 교실에 찾아가 아이의 자리에 앉아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데 내 아이가 이자리에서 이렇게선생님과 눈을 맞춘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학사 일정 중 필요한 부분은 메모를 하고, 선생님께서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부분은 입으로 읊어보며 잊이 않아야겠다 생각하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총회 너무 유익했어~" 총회가 끝나고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부분을 이야기하며 일년동안 아이의 학교생활을 방향성에 대해 남편과 함께 고민을 해보았고,

 아이의 자리에 앉았는데 생각보다 책상정리가 잘 되어있다며 집에서와는 다르게 학교에서는 잘지낼것 같다고 긍정회로도 돌려보았다.


"총회룩은? 은근 신경쓰더니?"

"에이 그거 별거 아니던데~"


 정말 그랬다. 총회날에는 그저 내가 편하고 어느정도 예의가 있는 복장이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총회날 수 많은 어머님들이 내곁을 스쳐지나갔지만

다른 사람의 총회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 아이가 다닐 학교와, 내 아이의 자리와, 아이의 일년을 그려봤을 뿐.


총회는 내 아이의 일년을 그려보는 날,

그것으로 충분한 날이다.

어떠한 옷도 엄마의 사랑을 가려내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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