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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Mar 23. 2023

내복을 뒤집어 놓는 아이

어제는 큰아이가 내복을 뒤집어 입는 날이었다.


첫째는 내복을 벗을때 항상 뒤집어서 벗어놓는다.

처음에는 내가 번번히  뒤집어 벗어놓은 내복을 다시 제대로 정리해 빨래를 해주었고, 이후 몇번은 잔소리를 해보았지만 아이는 전혀 변화가 없다.


어느날, 변하지 않는 아이의 태도에 너무 약이 올라서 내복을 뒤집어서 벗어놓은 날은 뒤집은채로 세탁을 해 그대로 개어 놓았다.

아이는 뒤집어진채로 개어진 내복을 이틀을 입은 후 또 뒤집어서 벗어놓는다.

그러니 아이는 이틀은 뒤집어진 내복을 입고, 이틀은 겉면이 제대로 드러난 옷을 입는 셈이다.


"일단 어짜피 내복은 안에 입는것이니깐 뒤집어져도 상관이 없고요

 전 매번 뒤집어 옷을 벗으니 두번에 한번은 제대로 입는거잖아요? 그것도 좋을것 같아요.

 또...내복 겉 뿐만 아니라 안쪽도 깨끗이 씻을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요?"


뒤집어진 내복을 입은채로 학습지를 풀며 해맑게 설명하는 아이를 보니 ...그래, 까짓꺼 내복좀 뒤집어 입는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행동에는 불편함이 없고 장점이 많다고 설명하는 아이를 보니 부럽기까지 하다.


중요한것은 상황을 대하는 태도이다.

상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면, 확신이 있다면 그것이 뒤집어진 내복이라 하더라도 당당할 수 있겠지


문득 늘 고민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날이 서 있는 내자신이 보인다.


슬쩍 입고 있는 티셔츠를 바라보다가...

뭐 티셔츠도 제대로 입었고

내 할일도 제법 잘해내고 있는데

이 정도면 '확신'같은 것도 좀 가져도 되지 않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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