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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Mar 24. 2023

성당이요? 졸혼했어요..


금요일 저녁이다.

오늘 저녁엔 아이들 준비물을 미리 챙기고 숙제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내일 아침엔 늦잠자는 아이들과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 기분좋아!


남편이 저녁에 회를 사올테니 가볍게 소주한잔 하자고 한다.

아이 기분이 너무 좋아 !!


이렇게 기분이 좋을때 시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르릉~~

서로 안부를 묻고, 오늘 저녁에 무엇을 드셨는지 여쭤보고, 요즘 병어가 살이 올라서 저녁에 병어회를 드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이러니 회가 더 빨리 먹고싶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의 주제가 아이들로 흘러갔다.


큰아이가 3학년이니 첫영성체를 해야 하는데 성당에 등록은 했냐고 어머님께서 물으셨다.


요즘 냉담중이라 이리저리 말을 돌려보았지만 어머님께서는 이때를 놓치지 않으시고,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있는 큰시누이네 이야기를 하면서 "부모가 성당을 열심히 다니지 않으니 아이들이 신앙이 없어서 그 모양으로 큰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난 가득한 근거를 대셨다.


아.....참기 힘들어 '하하하'하고 웃었는데, 어머님께서는 웃기만 하고 성당에 가지 않을 느낌을 받으셨는지 "웃기만 하지 말고 애들 데리고 빨리 성당 갈 생각을 해라!"라고 격앙된 어조로 말씀하셨다.


"이사 온지 아직 한달밖에 안되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라고 말하자

"너네가 2월 2일에 이사를 왔는데 지금이 3월 24일이니 한달은 한참 지나지 않았니? 내가 그것도 다 세지 않았을것 같니?" 라고 어머님은 내 숨통을 조여왔고 난 항복을 했다.

"네...조만간 다녀오겠습니다."




남편과 나는 성당에서 결혼을 했다.

성당을 다니다가 성당내에서 소개를 받아 만났으며, 연애를 하는 6년동안 주말마다 성당에 같이 가는 것이 우리 데이트의 중심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것도 성당에 신생아를 데리고가 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으며, 어린 아기를 데리고 늘 유아방에서 미사를 드리는 독실한 신자였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도 기도했고, 힘들고 고통스러울때도 우리는 기도를 했다기도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 있었다.


'있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냉담중이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 할수 없지만 우리는 성당에 다니는 것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독실한 신자이신 시부모님과 여러차례 부딪히며 '성당에 다니며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성당을 다니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을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라는 마음을 먹은 것이 이유의 일부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성당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에 의외이 파벌(?)같은 것이 있다는 걸을 알게 되어 실망하기도 했던 것 같다.

또 세상에 일어나는 험하고 좋지 않은 사건들을 보며 '신이 있다면 저런 일들이 왜 일어날까?'같은 회의감도 들었다.


유년시절, 그리고 청년시절 마냥 아름답게 보이던 세상에서 신을 맹목적으로 믿었다면

중년에 가까워지며 사는게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세상에 착한 사람이 힘들게 사는 경우가 너무 많고, 나쁜사람들이 악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며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럴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뭐, 성당을 다니겠다는 걸까, 안다니겠다는 걸까.


간단히 말하자면 종교를 '존중'을 하지만 마음이 가지는 않는다.

성당은 나에게 '졸혼'과 같은 상태인것 같다.

딱히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함께 하고 싶지도 않은,

앞으로 절대로 성당을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열심히 함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편안하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고 헤어져 있으며 떨어진 상태에서 각자를 응원해주는 졸혼같은 존재.

언젠가 서로 마음이 맞으면 다시 합칠수도 있지만 지금은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서로에게 건강한 상태랄까.


지금은 성당에 나가질 않지만,

더 건강하고, 거짓없이, 참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오늘을 열심히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옳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그런 삶의 태도가 나에겐 종교, 그 자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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