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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Mar 25. 2023

'마스다미리'를 환영합니다


 기분이 우울할땐 늘 일본 소설을 읽는다.

 기괴하고 최대한 감정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내용으로.

 그러려고 애쓴적은 없었는데 20대 어느날 부터 난 그러고 있었다.


 힘들다 싶을땐 어김없이 도서관 구석자리에서 책을산더미같이 쌓아두고 하루종일 책만 읽었다.

 그렇게 감정이 땅끝까지 내려오면 엉엉 울다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법이었지만 썩좋지 않았다. 과정속에 내가 너무 소모되었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그 습관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책을 읽는다.

 단지 우울하고 무거운 소설들이 아닌 가볍게 삶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었다.


 그 가운데 '마스다미리'가 있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다보면 친한 친구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래...나도 그래.... 괜찮지 않을때가 있어. 하지만 모두가 늘 괜찮아야 하는건 아니니깐 우리는 지극히 정상이야.'라고 공감받는 기분이랄까?


 이사전 살던 동네의 도서관에는 사서님이 마스다미리 팬이라도 되는지 마스다미리 전집이 구비되어있었으며,

 그녀의 책을 전문으로 하는 섹션구분까지 되어있어서 언제든지 마스다미리책을 볼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늘 나를 기다려주는 친한 언니가 있는 듯한 마음이 들었었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며 우울감이 찾아와 동네 도서관에 가서 마스다미리 책을 찾았다.

 도서관 한쪽 구석진 곳에 달랑 3권 있는 마스다미리의 책을 보고선 대여를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남편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도서관에 마스다미리 책이 없어...세권밖에 없어..."하며 난 울고 말았다.

 처음엔 훌쩍 거렸지만 나중엔 꺼이꺼이 울었고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나를 남편은 난처한 눈으로쳐다보았다.


 태어나 자랐던 포항과, 학교를 다니기위해 서울에 살았던 몇년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가 파주였다.

'그냥 여기도 살아보고 저기도 살아보지 뭐~' 하며 이사를 왔지만 사실 난 예전동네가 그리웠던것 같다


  낡은 마스다미리책이 낯선 도서관 한구석에 있는데 그게 내모습같아 마음이 아프고, 무섭고 겁이 났다.

  예전 살던곳 도서관에 여럿이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스다미리책은 외로워보이지 않았는데, 이사온 곳 도서관에 있는 마스마미리책은 책마저 외로워보였으니.....

 사실 난 외로웠던걸까?


 그렇게 그저그런 하루들을 보내다가 오늘은 남편 옷도 사고, 출판단지 북까페도 갈겸 파주에 나들이를 갔다.

 파주로 향하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출판단지 북까페도, 아울렛도 파주에 십년넘게 사는동안 몇번도 가지 않았던 곳이다.

 집에서 5분거리다보니 너무 동네느낌이라 가지 않았다. 주말에는 서울이나 인천 남양주에 차를 타고 갔다가 늦게 파주로 돌아오곤 했었다. 마을을 벗어나는것, 그게 나들이니깐.


 오늘은 파주아울렛에 가서 남편의 옷과 신발 몇가지를 득템!하고 짝짝짝 박수를 쳤다.

 오랜만에 정말 마음에 쏙드는 옷가지 들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북까페에서 차를 시켜놓고 이런저런 책들을 보며 이야기도 나눴다.

 그리고 보물섬이라는 헌책방에 향했다.


 거기서... 나를 기다린듯한! 마스다미리의 책들과 무레요코의 소설들을 만났다.

 다섯권이나 샀는데 만원이라니! 기쁜 마음에 책을 안고 쉬지않고 떠드는 나를 보며 남편은 피식 웃고야 말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슬쩍 이야기를 건넸다.

"그런데 말이야...살때도 좋았지만, 이렇게 나들이를 오기에 더 좋은 동네같지 않아 파주는? 사는 동안은 너무 다른 곳으로 놀러가고 싶어서 이렇게 즐겨본적이 없었거든.

 이제 두어달에 한번씩 이렇게 나들이 오자.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


 점심을 가볍게 먹고 오후엔 아이들과 놀이터를 가고, 낮잠을 잠시 잤으며 오늘 사온 마스다미리의 만화책을 무릎을 치며 읽고, 무레 요코의 소설을 읽다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그녀의 책들은 외롭게 도서관에 있지 않았다.

 나의 삶속으로 들어오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이렇게 인생은 이렇게 매일매일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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