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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Apr 13. 2023

엉망진창 스콘대잔치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한 달이나 지난 요거트를 발견하고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할머니댁에 놀러를 갔는데 할머니가 누군가 선물로 주어서 아끼던 귀한 요플레를 냉장고에서 꺼내주신 적이 있었다.

요플레 딸기맛은 유통기한이 두 달이나 지나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나서 못 먹는 거라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어제도 하나 열어서 먹었는데 아무 탈이 없었는걸..."하고 시무룩해지셨고,


남편은 손녀사위가 왔는데 줄 것이 없어 어쩔 줄 몰라하시는 할머니를 보고는

"저 군대에 있을 때 이런 거 많이 먹어봤습니다. 며칠 지나면 발효가 잘되어서 더 맛있어요. 주십시오!"하고 요플레를 맛있게 퍼먹었고, 나 또한 남편옆에서 요플레를 먹었다.

유통기한이 두 달이나 지난 요플레는 내 몸에 그 어떤 변화도 만들지 않았다.


 이 기억 덕분에 나는 유통기한이 한 달이 지난 5개의 요구르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되었다.

 한꺼번에 먹자니 장청소가 될 것 같고...고민중 어디선가 스콘에 우유대신 요거트를 넣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자자!! 박력분 촵촵!! 하다 보니 어랏??

박력분이 모자라다.

그렇다면 코스트코에 갔다가 호기심에 사본 아몬드가루를 넣어보자...

아몬드가루만 넣다 보니 스콘이 아몬드떡이 되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어 갑작스레 강력분도 넣었다



이때부터 가루 대잔치는 시작이 되었고.

250g에 맞추긴 했으나 강력분, 박력분, 아몬드가루의 비율은 전혀 알 수 없는 마법의 가루덩어리가 생겼다.

가루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요구르트를 넣어야지.

그런데 요거트 세 통을 넣었더니 뭔가 아쉽다.

한통을 더 넣는 순간 반죽은 떡이 되었고.... 아몬드가루를 넣고, 요거트를 넣고, 가루를 넣다 반복하다 보니...

요거트 다섯 통이 다 들어간 거대한 스콘반죽이 완성되었다.


휴지를 거치고 반죽을 오븐에 구웠다.

스콘보다는 빵 같고, 빵보다는 살짝 바삭거리는 스콘인 듯 스콘 아닌 스콘 같은 무엇이 완성.!!!!



 가족들도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낯선 느낌이 있는 이 빵을 맛있게 먹었다.


첫째가 말했다. "엄마~! 이거 또 해주세요!"


"아니. 이거랑 똑같은 빵은 다시 만들 수 없어."



맞다. 이 비슷한 느낌의 스콘은 만들 수도 있겠지.

아몬드가루와 박력분을 좀 더 정량화하고 요거트 비율은 좀 더 섬세해지는 더 완성도 높은 스콘은 아마도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전혀 계량을 하지 않은 터라 이 가루 저 가루 잔뜩 넣어 만든 이 빵은 오늘만 먹을 수 있는 빵.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고유한 빵일 테다.

마치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우리의 이 시간, 오늘처럼.


오늘 만든 스콘은 맛있어서 귀한 것이 아니었다.

맛은 차치하고, 다시는 이렇게 빵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 그것 그 자체로서 귀한 것이다.

고유함, 유일함에 말이다.


스콘을 먹으며,

나의 하루하루도 다시는 만날 수 없으니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함 그것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엉망인 날도 있다. 오늘 나의 가루반죽처럼....

이것저것 잘하려고 애쓰다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루가 되고, 실언을 하고, 화를 내고 엉망진창인 나를 보며 삶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다 보면, 실수와 엉망진창 가운데에서 오늘처럼 성과를 만들어내는 날도 있고 의외의 기쁨을 발견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물론 완벽한 계량을 했음에도 묘하게 맛이 없는 스콘이 만들어지는 날이 있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실수 없는 하루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만 알 수 없는 아쉬움에 눈물짓는 날도 있을 것이다.


다 괜찮다.

그저 오늘의 스콘처럼 그 자체를 즐기면 그만이다.

당신과 나의 인생의 고유한 단 하루,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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