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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Aug 08. 2023

제발,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예능프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 또래 대부분이 그랬듯이 시작은 무한도전이었다.

대학생 시절 자취방에서 반마리 치킨을 시켜놓고 보는 무한도전은 일주일의 랜드마크였으며 슬럼프를 건너뛰게 해주는 점프키 같은 존재였다.      


여전히 나는 예능프로를 좋아한다. 일요일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을 보며 웃느라 바닥을 뒹굴거리는 것이 우리 가족 일주일의 마무리이다.     


그런 나에게 요즘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


예능 중 연예인과 그들의 매니저가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물놀이를 하는데 TV속 패널들이 인상적인 순간을 표현하때 쓰는 단어가 매번“미쳤다였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비주얼 미쳤다!”

음식을 먹다가 “맛이 미쳤다!”

멋진 풍경이 나오면 “여기 미쳤다!”

옷을 예쁘게 입으면 “패션 미쳤다.”     


이 프로그램뿐 아니라 요즘 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아무렇지 않게 출연자들은 “미쳤다”라는 말로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많은 것을 형용하는 단어가 미쳤다가 되어가니, TV를 보다가 머리가 점점 멍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을 형용하는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있는가.

아름답다.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화려하다. 반짝이다. 맛있다. 달짝지근하다. 매콤 달콤하다. 설레다. 눈부시다.....


나 같은 평범한 시민도 몇 분만 생각하면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말들이 있는데 ‘말’로 먹고사는 TV출연자들이 온갖 것을 표현하는 단어가 기껏 ‘미쳤다’라니 정말 가슴이 답답할 노릇이다.     


안 그래도 미쳐가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 걱정이 되는 요즈음,

웃자고 켠 TV에서 미쳤다는 이야기를 분 단위로 듣고 있자니 불편한 마음에 TV를 꺼버렸다.     


말은 곧 그 사람이고, 말은 행동을 만든다.     

나야 안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TV를 보며 본인들도 모르게 감화되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TV출연자들이 조금만 더 책임감을 가지고 말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TV를 볼 때 이왕이면, 아름다운 말을 들으며 신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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