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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Aug 09. 2023

인생은 확률게임이 아닌걸

  휴가철 일요일에 거제도에서 일산 까지 오려니 갈길이 막막했다. 내려오는 길 고속도로를 가득 웠던 차들은 올라가는 길에도 한가득이겠지.


  멀미가 있는 아이들이 차를 오래 타기 힘들 것 같아 이른 새벽 거제도에서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새벽 4시, 짐도 다 싣고 아이들도 태우고 시부모님께 인사를 하려던 찰나 그만 돌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한참을 다 구르고 나니 계단 가까이 세워둔 우리 차 옆이었다.


  "너 여기서 뭐 해?!!"  내가 구르는 것을 보지 못한 남편은 차 문을 닫으려다 길가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물어보았고.

  "그냥... 누워있기 좋은 시간인 것 같아서!" 라며 부끄러운 맘에 농을 던지고는 벌떡 일어나서 차에 탔다.

부끄러움은 아픔을 이긴다.


  그렇게 6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왼쪽 다리와 왼쪽 팔 전체에 찰과상이 있었다. 피를 보니 그제야 쓰라려 왔다.  다음날은 어깨가 욱신욱신 아팠다. 구르면서 돌에 부딪힌 곳들에 타박상을 입은 모양이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나니 까진 상처가 잔뜩인 정강이에 피멍까지 올라온 게 아닌가.


  남편은 "안 아팠어? 어디 한 군데 안 부러져서 진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따갑고 욱신거리고 아팠는데 괜찮았다. 정말 괜찮았다.


  그러다가 이틀 후쯤에는 기침이 나고 목이 아픈 거 아닌가. 동네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먹었는데 저녁이 되니 인후통에 두통까지 생기고 오한이 오는 듯했다.

  때마침 저녁으로 두루치기를 해달라는 남편에게 갑자기 화가 나 "아픈 사람보고 두루치기 소리가 나오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곤 두루치기를 대충 해 냄비째 던지고는 방에 들어가 누웠다.


  목이 아픈데 이상하게 짜증이 나고 무섭고 불안하고 화가 나고 오만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휘몰아쳤다.


  다음날 기침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로나 검사를 해보니 선명하게 뜨는 두줄! 코로나 양성 당첨이다.


  두줄을 남편에게 보여주는데 웃음이 튀어나온다.

"큭큭큭큭... 나 코로나였나 봐. 어쩐지 지난번에 코로나 걸렸을 때 보다 아프다 싶었는데 역시나 코로나였어"


  약기운이 돌아 정신이 들자 마스크를 쓰고 아이들이 먹을 끼니를 해놓고 찌개를 끓였다.

보글보글 순두부찌개 소리가 경쾌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하는 나에게 남편은 " 컨디션이 좋지 않을 텐데 적당한 것을 시켜 먹는 게 낫지 않겠어? 괜찮아?"라고 물었다.


"안 괜찮지. 그런데 할만해. 후딱 하고 쉴게!"


  어제 두루치기 먹자고 그랬다고 냄비테러를 부린 여자가 오늘은 코로나 확진을 받고 요리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말 변태 같은 상황이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불확실성'이었다.


  차가 얼마나 몰려올지  알 수 없고 그렇다면 귀가할 때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불편해서 새벽 4시에 아이들과 남편을 깨워 출발하는 사람,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러서 온몸에 상처가 나도, 상처가 어디서 났는지를 알면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지만,

 인후통에 약간의 두통이 있어도 그 통증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불안함에 병원을 쫓아가고 예민함의 수치가 끝까지 솟아오르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 피식 웃다가

 그렇다면 어찌 살아야 되나 의문이 든다.

 이 세상에는 온통 불확실한 것들 뿐인데.


  불확실성의 확률을 줄이겠다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노력만큼 성취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  최선을 다했지만 나에게서 멀어지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봐야 할 때도 있는데

  심지어 일기예보도 30분마다 바뀌는 세상인데!

  이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우리 가족과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결국 그 주말 나는 새벽 4시에 출발했지만 귀가에 6시간이 걸렸고, 비슷한 거리에 사시는 시누 가족은 9시쯤 출발했지만 거제도에서 서울까지 같은 6시간에 귀가가 가능했다.

  인후통과 두통은 약을 먹고 금방 사라졌지만 온몸의 딱지들은 겨울이 올 때 즈음이 되어서야 온전히 나아질 것 같다.


  40이 되어서 기껏 알아낸 조그만 삶의 진리는 인생은 확률게임이 아니라는 것인데

  하지만 나는 꽤나 확률에 집착하는 사람이고...


  이래서 삶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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