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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Oct 25. 2023

우리는 사계절을 함께하며 찰떡 같아지고 있다.

  - 싱크대 AS 이야기

싱크대 벽과 대리석 상판 사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며칠을 고민하더니 아무래도 '대리석이 휘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싱크대 시공해 주신 사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몇 개월 만에 만났다.     




2월에 시공을 했으니 8개월 만인 것 같다. 직접 디자인과 사이즈를 정하고 자재를 정성스레 골랐던 우리에게도 싱크대는 특별하지만, 함께 의논하고 시공을 해주신 사장님도 우리 만큼이나 반가워하시고 궁금해하셨다.


이사는 잘했는지, 가구는 잘 사용하고 있는지, 불편함은 없는지,

본인이 몇 주에 걸쳐 공사한 이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이런저런 안부를 전하고 싱크대를 살펴보시던 사장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싱크대가 이 집에 잘 적응해서 이제 자리를 잡았네요 “      


가구를 치수에 맞게 꼼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시간을 갖고 집에 자리를 잘 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을 하셨다.


나무와 돌을 이용해서 만든 가구들이기에 온도와 습도에 의한 작은 변화들은 피할 수 없고 또 각각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도구들, 이를테면 냄비, 유리잔, 그릇 같은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가정의 생활환경에 따라 가구가 시간을 가지며 잘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냄비를 모두 무쇠냄비나 스텐으로만 써서 가벼운 조리도구를 쓰는 집보다 가구가 전반적으로 바닥으로 살짝 내려온 상태였고, 유리컵만 올려놓는 곳에는 또 그에 따른 무게가 잡혀있었다.      


능숙한 손으로 여러 가지 나사 같은 것을 조으고 실리콘이 뜬 부분은 다시 실리콘을 매워 주방은  우리 집의 ‘그것’이 되었다.     

     


 


공사가 끝나자 사장님께서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시원한 커피와 간단한 쿠키를 내놓자 사장님은 밝게 웃으셨다.


”잘 자리 잡았어요. 모든 인테리어가 그래요. 공사를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사계절이 몇 번을 지나면서 더위도 겪고 꽁꽁 얼어도 보고... 습도에도 적응하며 1~2년이 지나며 인테리어가 집에 붙는 거예요. 찰떡같이.

요즘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정보가 많아서 기술자가 미리 확인하기 전에 진단부터하고 AS시공을 대뜸 이야기하거나 공사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도 많은데요... 허허.

그거 전문가가 봐야 알아요. 아래판도 뜯어보고 나사 조임도 확인하고 그래야 왜 그런지 알거든요. 저 이래 봐도 싱크대 30년 밖에 안되었어요 “     


 시원하게 내려드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드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장님의 얼굴에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남의 집에 누워 싱크대 안으로 반쯤 들어가서 이것저것 확인 하실 때에는 체면 같은 하찮은 것보다는 싱크대가 이 집에 얼마나 잘 붙었나... 확인하기 위한 마음만이 가득하셨다.     


 싱크대만 그럴까. 사람은, 학교는, 동네는 그렇지 않던가. 몇 년을 겪으며 서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살짝 벌어져서 실리콘을 바르는 마음으로 괜히 만나서 차도 마시며 다시 붙고... 그렇게 사계절이 몇 번을 지나며 사람도 , 학교도, 동네도 내 것이 되지 않던가. 잘 자리잡지 않던가.     


 오늘 우리의 틈이 살짝 벌어져있어도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무언가가 조금 불편해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우리는 사계절을 함께 온전히 겪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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