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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Jul 24. 2024

내가 글을 자주 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변명

나는 왜 글을 잘 쓰지 못하는가 생각을 해보았다.

글을 쓰려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생각하는 시간에는 여러가지가 필요한데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기도 해야하고,

서가를 괜히 서성서성 걸어보기도 해야하며,

하늘을 보며 멍을 때리고 앉아있는 시간은 필수 이다.


이걸 썼다, 저걸 썼다가 자꾸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도 해야 할것이며

그러다 지겨워져서 이불더미에 털썩 기대어 얇은 여름 이불을 감고 딩굴딩굴 하며

내가 핫도그 속 소세지가 된 듯한 느낌도 잠시 가져야 한다

담배를 피우는 자라면 담배를 한대 피면서 지나가는 버스의 광고판을 읽기도 해야 하겠지.

돌아 다니다 나뭇잎을 하나 떼어보고는 나뭇잎의 결대로 나무잎을 찢으며 진득한 초록향을 느끼고

나무잎을 던지다 우연히 발견한 집게벌레를 보며 어린시절의 추억에 빠지기도 해야 한다.


그러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왜 나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까 고민을 하며 하늘을 보다가

뭉개뭉개 구름을 보며 구름을 보니 고기가 층층이 쌓인 돈까스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은 이미 삼각김밥을 먹었으니 내일은 반드시 돈까스를 먹겠다 다짐을 하고서는

아직도 한줄도 써내려가지 못한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빡!'하고 글감은 떠오르고(사실 그 글감이란 것도 대부분의 경우 별것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좌라라라 타자를 치며 어느새 이야기들이 모니터 화면 속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없이 무용한 순간들, 아니 사실은 '빡!'을 위해서 필요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쳐야 글을 쓸수 있는데 나는 늘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는것이 문제다.





모두들 학교를 가면 일단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침에 뻘건 국물이나 노란 카레를 좀 먹지 않으면 좋으련만 우리가족들은 꼭 김치찌개나 카레를 아침으로 먹는것을 좋아한다. 아...설거지 시간이 X2 로 걸린다.

뽀득뽀득 설거지를 끝내고 씽크대를 물기하나 없이 닦아 놓는다.  참참!! 씽크대 위는 행주로 닦았지만 살균수도 한번 더 닦아 세균이 없도록 하는 것을 잊지 말고...


방방을 돌아다니며 가족들이 썼던 수건을 삶아빨고,

바닥을 청소기로 밀고, 물걸레 청소기로 다시한번 먼지를 닦아낸다.

자잘한 물건들이 아무데나 놓여 있지 않도록 바삐 돌아다니며, 필요는 없지만 희한하게 없어지면 아이들이 꼭 찾곤 하는 이상한 물건들을 장난감 방에 잘 모아둔다.


그제서야 노트북을 켜서는 오늘 수업자료 준비를 한다. 오늘의 단어시험을 모두 프린트 하고, 문법 시험문제에 오류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은 필수이다. 학생들에게 오늘의 단어시험 범위를 확인차 한번 더 문자를 보낸다.(이렇게 친절히 안내 했는데 오답있으면 매우 혼남 ㅋㅋㅋ)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여동사를 이해하지 못한것 같아 뭔가 찜찜한 J양을 위해선 수여동사 확인용 연습문제 프린트를 만들고 나서,


요즘 빠져있는 빨간 머리앤 원서쓰기도 잊지 않고 쓰도록 한다. '빨간머리앤이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였어!!!!'눈물을 찔끔 흘리는 감탄과 동시에 내 머릿속을 스치는 안방 화장실에 있는 다 쓴 트리트먼트 통.

아....왜 앤은 하필이면 머리카락이 빨간색이라 트리트먼트통이 생각나게 했을까.....


재빨리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서는 다쓴 트리트먼트 통과 샴푸통 그리고 몇가지 더 재활용 할 것을 모아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미리 눌러 둔다. 1층까지 내려가서 재활용을 하고나서 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 울리는 '당근당근' 아...맥포머스 3만원에 내놓았는데 5천원을 깎아 달라네. 안되는데.... 이럴땐 단호해야지! "안됩니다!" 답글을 달고는 얼른 집에 들어오니 이제 아이들의 하교 시간.


아이들이 오늘 먹을 간식을 촵촵촵 준비하다 보면 상쾌한 목소리로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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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내일 오전에 다시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나의 육아 타임이 시작된다.

이것은 변명의 글이다.

특히 내가 글을 자주 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구차한 변명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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