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쯤 지나자
다양한 이야기들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잘한다는 똑 부러진다는 아이
누구랑 누구가 교실에서 다투었다는 이야기
선생님께 자주 지적을 받는다는 어떤 아이....
학기 초 에는 '즐겁게 학교에 갔다 오기만 해~'라고 생각했던, 사랑이 넘치는 우아한 엄마들도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에 점점 형사가 되기 시작한다
아이가 누구랑 친한지,
점심을 다 먹고 쉬는 시간에는 도대체 무얼 하는지,
누구랑 노는지, 다툰 적은 없었는지…
엄마들은 늘 궁금하다
물어도 좀처럼 깔끔한 대답을 않는 아이를 지켜보다
선생님께서 알림장에 힌트라도 주시는 날에
엄마들은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한다.
'교실에서 장난이라며 친구를 툭툭 치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장난이라도 친구는 폭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가정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지도해주세요'
친한 언니는 위의 알림장을 보고 아들에게
"너 혹시 친구들 툭툭 쳤니?"라고 했고
아들이 "저는 절대 아니에요!"라고 하자...
"너 요즘 형한테 하는 짓 봐서는 툭툭 친 게 너일 가능성이 상당히 많아. 늘 지켜보고 있으니 명심해...."
라고 아이를 떠봤다는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주 알림장의 주인공이 우리 아들 같단 말이야..."
여자 아이들의 엄마는 아무래도 교우관계가 제일 궁금하다.
'1학년 때부터 단짝을 만드는 친구도 있다는데... 친구들과 잘 지낼까? 겉돌지는 않을까 모르겠네..., '
하굣길, 다른 아이들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나오는데, 내 아이가 혼자 걸어 나오기라도 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엄마들도 친구관계로 꽤나 맘 졸여보았던, 여학생이 아니었던가!
내 딸 주주는 학기초에 삼총사라며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있었다.
두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서로 연락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주주는 "나만 핸드폰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카톡이랑 영상통화를 못한단 말이에요~”라며 한참을 핸드폰을 사달라고 졸랐으나, 우리 부부는 주주에게 핸드폰을 사주지 않았다.
아직은 스마트폰을 아이들이 가지게 되면 득 보다 실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주주는 점점 삼총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어느 날 난 핸드폰을 사주지 않아 주주가 삼총사 사이에 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날 난 형사로 변신했다.
"주주야~ 요즘 누구랑 제일 많이 놀아~?"
"응. 수현이가 내 앞에 앉아있어서 수현이랑 종이접기를 주로 해."
"그래? 그런데 예전에는 삼총사가 함께 놀았잖아.
그 친구들이랑은 이제 많이 안 놀아?"
"지혜랑 서우는 여전히 많이 친한 것 같아. 둘이서 통화도 매일매일 한대. 그런데 난 요즘 수현이랑 종이 접기나 클레이를 하며 노는 편이야."
(흑..... 역시.... 내가 핸드폰을 사주지 않아서 그런 건가..ㅠ.ㅠ)
"그래? 그럼 삼총사였던 지혜랑 서우는 통화 말고.. 학교에서도 둘이 많이 놀아? 쉬는 시간에 서로 막 찾아가서 놀고 그래?"
"쉬는 시간에 주주한테 자주 찾아오는 친구는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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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질문에 주주가 만들던 블록을 내려놓더니
답답하다는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말했다.
"엄마, 내가 쉬는 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누구랑 노는지 이렇~게 막 쳐다보고 있지 않아.
그래서 다른 자리의 친구들이 누구랑 노는지는 잘 모르겠어. 나는 쉬는 시간에 내 할 일 하기도 바쁘다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부끄러움이 마구 몰려오며
이날 나의 형사 놀이는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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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질문에는 때론 방향성이 담긴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엄마의 불안이 담긴 질문을 정확히 눈치채고
대답을 하지 않으려 말을 돌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감정은 아니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곤 한다.
사랑하는 엄마의 불안은 아이도 걱정되니깐...
왜 그랬을까,
내가 듣기 바랐던 주주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교실의 모든 아이와 친하며 인기가 많고
늘 친구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는 이야기라도 들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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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엄마의 질문이 옳지 않다 표현해준
주주에게 고마운 그날,
혹시 어느 날 다시 불안이 가득 담긴 형사 놀이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땐 꼭꼭 입을 닫고 주주를 보고 방긋 웃어야겠다 다짐했다.
그냥 "오늘 학교에 간 네가 유난히 보고 싶은 날이었어. 우리 딸 많이 사랑해"라고 말하며
이것저것 묻기보다는
아이를 품에 가득 안아주겠다 다짐하며
부끄러운 나의 형사 놀이는 가장 구석진 곳에 접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