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오은영 박사님의 『화해』입니다. 이 책은 저마다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이기도 하고, 당신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기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죠.
이 책은 우리의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왜 이렇게 아픈지, 그리고 이 아픔을 어떻게 바라보고 앞으로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박사님은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무엇보다 먼저 자신과 화해하기를 바랍니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과의 화해는 꼭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라고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나’.
그런 ‘나’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고 미워했던 ‘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그 상처받은 ‘나’와 미워했던 ‘내’가 화해하기를 바라요. 상처의 시작은 ‘나’때문이 아니었어요. 그것을 기억하세요. 그것을 알고 당신이 자신과 진정으로 화해하기를 바랍니다.
앞에서언급한 대로, 저는 11살부터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새엄마는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성격이 불같고 감정적이었죠. 화를 냈다가, 갑자기 불쌍한 척 비굴하게 행동했다가, 때로는 저를 생각하는 척하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일관되게 화만 냈다면, 저는 그녀를 한결같이 미워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면, 왠지 불쌍해 보여서 받아주고, 착한 딸이 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다가가고, 도와주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새엄마는 갑자기 화를 내고 욕을 퍼부었죠. 그럴 때마다 ‘또 휘둘렸네’, ‘또 속았네’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고, 결국 저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사람에게 계속 이런 취급을 받는 현실이 제 자존감을 무너뜨렸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희로애락에 대해 한 번이라도 충분히 이해받아 본 적이 있나 싶습니다. 이런 이해를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이해받지 못해도 거의 버려졌다는 느낌으로 치닫는 거예요”
이런 경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상화’가 심해지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이가 되면 무조건 수용되고, 무조건 자기편이 되어주길 기대하게 되죠.
언제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해주는 관계를 절실히 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방치되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늘 내 말에 동의해 줘야만 수용받는 기분이 들었고, 반대 의견을 내면 거부당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죠. 하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그동안 모든 사람이 나를 -엄마가 아이 대하듯- 대해주길 바랐구나’ 하고요.
이제는 누군가 저와 다른 의견을 내면 여전히 울컥하고 수치심이 올라오지만, 그 감정을 다스리는 힘이 생겼습니다. 아직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기에 계속 노력해야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뇝니다.
‘사람은 다 생각이 다른 거야. 너를 거부한 게 아니라, 그 사람도 자기 의견을 말한 것뿐이야.’
그러면 내면의 아이는 ‘그렇구나’ 하고 조용히 마음속 방으로 들어갑니다. 내면에 자리한 아이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순 없겠지만, 그 아이와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이제는 화해해야 할 때
“그 상처는 치료가 안 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식의 해결은 어려울 겁니다.”
박사님은 우리의 상처가 없었던 일처럼 사라질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중요한 건 더 이상 그 상처에 매여 있지 않는 것입니다. 아픈 나에게 "이제 아프지 마"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고 새로운 창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 해결 방법은 이겁니다.
상처가 회복되어야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상처의 회복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평생 상처 속에서 헤매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나의 상황이 나쁠 수는 있지만, 이제 그 관계는 끝났다고 마음속에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어야 합니다.
“그 관계는 이미 끝났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나’에게 사과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부모를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 결국 진정한 화해는 ‘나’와 ‘내'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힘들었던 감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정말 이 말을 꺼내는 것이 어려웠어요.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 같아 오랫동안 망설였죠.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효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박사님의 조언에 힘입어 용기를 냈습니다. 반응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새엄마는 제가 말을 꺼내자마자 “그런 적 없다”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아버지는 미안해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한동안 그 일로 많이 힘들어하셨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도 무척 힘들었죠. 그 기간 동안 아버지는 저에게 자주 "사랑한다"며 "미안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지만요. 제가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는 건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조금 더 가벼워졌습니다. 상황이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마음속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낸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변화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저는 40살 생일에 처음으로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았습니다.
돈에 인색하신 분이었기에, 이것도 나름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여전히 그 상처는 제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때때로 저를 흔들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