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꿈은 화가였다. 그러나 그 당시 미술 쪽 진로가 지금처럼 다양화되기 전이라 부모님은 반대하셨고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3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라는 생각에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했다. 그 당시 나는 심리학과에 가고 싶었고 성적을 조금만 올리면 지원해 볼 수 있을 듯하여 부모님께 상의드렸다. 그러나 부모님은 단호하게 반대하셨고 뜻을 따르지 않을 경우 대학 진학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셨다. 미술도 공부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늘 포기해야 했고 내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과에 진학했지만 1학기 만에 휴학을 했다.
그리고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짐을 싸고 집에서 나와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그때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오빠의 칭찬 한마디에 솔깃해 여군을 준비하겠다고 까불다가 포기했고 돈이나 벌자며 공장에 취직했다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러나 또 갈등이 생겨 아예 자퇴를 한 것이다.
그 뒤로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고 객지로 떠났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직장다운 직장에 취직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인생 계획은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꿈같은 건 꿀 생각도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았다. 아빠 말대로 취직도 했으니 더 이상 신경 쓸 일은 없었다.
그러다 옆구리에 바람이 들었다. 남들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데 나는 인천으로 갔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다 같이 상경의 꿈을 꾸었으나 현실과 타협해 인천으로 간 것이다. 인천에 가면 성공해서 부자가 될 줄 알았다. 그때 나이 27살이었는데 참 철딱서니가 없더랬다.
막상 여러 일자리에 지원하고 면접도 봤으나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연히 강남에 취직해 들떴던 적도 있다. 그러나 보름 만에 그만두었다(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으니 넘어가자)
여하튼 그렇게 1년을 방황하다 결국 원래 근무하던 회사에 재입사를 했다. 나는 완전히 정착했다(고 생각했다.)
슬슬 자리를 잡고 결혼도 생각하던 그때가 30살이었는데 믿던 도끼에 사기를 당했다(하.. 이 이야기도 넘어가자) 나는 보증금과 퇴직금까지 빚 갚는데 다 써야만 했다. 그리고 부모님 집으로 10년 만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간이 흘렀으니 새엄마도 많이 변했을 거라 기대했었다. 심적으로 힘들 때라 가족들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내가 새엄마와의 갈등을 얕잡아 본 것이다. 결국 1년도 채 안 돼서 다시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