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소리조차 듣기 싫거나, 나쁘거나.
몇 년 전, 둘째 육아로 지쳐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남편도 회사 일과 집안일로 무척 힘든 때였고,
그날따라 나는, 뭐라도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싱싱한 생굴을 사 와서 준비하고, 굴전도 부쳤다.
(남편은 굴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직 기어 다니는 둘째, 엄마 손이 필요한 첫째,
이 둘을 챙기며 애들 밥을 만들고, 그 와중에 남편 먹을 것까지 준비하는 건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둘째는 안아달라고 보채고, 주방은 밀가루와 기름이 뒤섞여 전쟁통같았지만
그래도 남편의 피로가 조금은 풀리길 바랐다.
사실 굴전- 뭐 별 것도 아닌데, 애들 저녁 먹이는 와중에 하려니 땀이 줄줄 났다.
하지만 정작 밤늦게 퇴근한 남편과 나는
집 대출 이야기며 이런저런 문제로, 결국 다투고 말았다.
서운함과 화가 뒤섞여, ‘오늘은 절대 먼저 화를 풀지 않겠다.’며
혼자 씩씩대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내 팔을 붙잡고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여보 기분 망쳤어요. 미안해.”
그 말투와 표정이, 어쩐지 기운 빠진 사람처럼 안쓰러워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가도
이런 순간들에 마음이 스르르 풀린 적이 꽤 많았다.
피곤함을 잔뜩 안고 웅크린 채 잠든 그의 옆모습,
늦은 밤 소파 구석에서 혼자 휴대폰을 보며 피식피식 웃는 모습..
그런 순간들을 보면 화가 금세 사그라든다.
‘짠하다’는 표현이 좀 어울릴까?
사랑과 정, 의리와 책임감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녹아드는 감정이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넓고, 더 깊은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이가 안 좋거나, 이혼한 부부들이 종종 이런 얘길 하더라.
"사랑이 식으면, 상대가 자면서 내는 숨소리조차 듣기 싫어진다"라고.
그래서 나는 더욱더 이렇게 믿게 되었다.
<누군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동시에 올라온다면,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