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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단 May 10. 2020

나의 시작, 10년간의 기행기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 데미안 中 -


'나의 시작'은 스물셋이었다.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꿈틀거리는 그 아름답던 때. 갈피를 잡지 못하던 스물셋의 대학생은「데미안」의 한 구절을 읽고 궁금해졌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그 사람은 무슨 모습일까. 그 형체를 스케치하기 위해 빈 종이를 꺼내 끄적이기 시작했다. 쓰는 동안에 그 형체는 미래의 내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고, 내가 가야 할 길의 표지판처럼,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종이를 가득 채운 후의 결론은 '잘 모르겠다.'였다.


그러나 조급하지 않았다. 그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었다. 말을 내뱉는 건 쉬운 일이지만 문장을 쓴다는 건 꽤나 깊은 심호흡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급하게 숨을 들이쉬다 보면 분명 쓰는 호흡이 가빠올 게 분명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많은 글을 썼다. 벽돌을 쌓듯 기다란 논술문을 쓰기도 했다. 밤을 꼴딱 새우면서 지난 역사를 탐구하고 사료를 해석하며 내 생각을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열심히 채색한 글들은 힘과 색깔은 선명했지만, 어쩐지 생명력이 없는 조화처럼 느껴졌다. 그 글들을 뒤로한 채,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가사를 쓰자, 하고 생각했다.


아직 어리다고 말하기엔 벌써 내 나이는 23

벌써 어른이라 말하기엔 아직 내 나이는 23

누가 답을 알려줘요, 이대로 그냥 가면 될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할래요


- 23 中 -


1년이 지나고 나면 조금 달라질까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변한 게 있다면 '쓴다는 건 어딘가 괴로운 일'이라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밤이 조금 더 길어졌다는 것 정도가 있었다. 스물넷의 방황하는 청년은 해가 잠에 든 그 긴 시간을 지새우며 더 많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쓰다 보면, 종이들을 쌓다 보면 그것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 것이라 굳게 믿었다. 위아래의 눈꺼풀이 입맞춤을 하는 그 순간까지 단어를 쓰고 문장을 썼다.


우울한가 봐 친구들이 너 왜 그러냐

좀 지쳤나 봐 사람들에도 꿈에도

밤이 긴가 봐 해가 떠오르지 않네

잠이 들까 봐 눈을 뜨고 있어 오늘도


- 24 中 -


지금 생각해보니 그 모든 과정은 사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듣기만 해도 싱그러운 그 이름을 쫓았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를 사랑하면 할수록 나 자신은 점점 지치고 피폐해져 갔다. 그 아름다운 사랑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내 전부였고 내가 망가지더라도 지켜야 할 원대한 꿈이었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준다면 좋겠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그를 위한 편지였으므로, 타인의 시선은 무시한 채 가슴 한쪽이 아려오면서도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그 푸른빛의 사랑을, 그 가슴 아린 행복을 세상은 '청춘'이라 부른다.


우리들 청춘의 색은 항상 푸른색

짙은 색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겠지

오늘의 밤을 나는 또 칠할 수밖에 없네


일어나, 행복이란 빛바랜 줄을 쫓아

그것마저 차마 잡지 않는다고 하면 

넌 푸른 밤하늘에 떨어지고 말 거야


- 블루 中 -


행복이란 빛바랜 줄을 쫓다,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사랑하던 청춘과의 이별은 가슴 아팠지만 내 기행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그 기행의 끝은 어디일까. 성공보다 나는 더 간절히 10년이 지나도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내 청춘의 이야기를 1년에 하나씩 가사와 노래로 만들었다. 스물셋부터 시작해 10년 동안의 긴 기행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가수도 작사가도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 내 가사를 읽고 내 노래를 들어줄 누군가를 위하여 계속해서 써내려갔다.


“그래도 나는 늘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다.”


- 데미안 中 -


이렇게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내가 쓴 가사들을 이정표 삼아서 10년 후로 가고 있었다. 스물셋의 내가 이제 희미해져 보이지 않을 때가 되면 내가 하는 일들이 의미가 있을까.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되어있을까. 그때가 되면 다른 기행을 시작해야 할까.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고민들을 쌓으며 단어를 쓰고 문장을 채운다. 10년이 지난 후를 꿈꾸며 오늘 밤도 '나의 시작, 10년 간의 기행기'의 스물 다섯번째 기록을 쓴다.


수평선을 날아가는 저 비행기처럼

나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

기나긴 여행으로 날갯죽지가 아파

가로등에 앉아 잠깐 쉬겠지


- 25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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