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친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의 장례식 문자가 왔다. 나는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았고 방금 입 안으로 집어 넣었던 밥알이 모래알처럼 푸석하게 혀끝에 맴돌았다.
결국 먹고 있던 밥을 치우고 조용히 설거지를 마쳤다.
툭툭
투박한 손길로 명치께를 처내렸다. 배꼽 위 중앙에 아까 삼킨 밥알 뭉치가 걸린듯 신경을 거슬었다. 끝내 서랍 속 작은 반짇고리를 꺼내 들었다. 작은 고무줄로 엄지손가락을 둘둘 묶었다. 짤막한 엄지는 목이 졸려 어느새 보라색으로 질려 있었다. 그 색깔이 신호라도 되듯 푹 바늘이 엄지손가락을 끝을 파고 들었다. 검붉은 피가 포르르 작은 구멍을 타고 솟았다.
꺽-
트름이 샜다.
그러고 조금 앉아 있자니 퇴근한 동생이 찬기를 몰고 집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손엔 샐러드 박스가 든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 봉투가 들려 있었다. 나는 일렁였던 속을 진정시키며 동생의 식사를 멍하니 바라 보았다. 포장해온 샐러드는 플라스틱 용기 안 풀떼기 몇 장에 몇 덩이 안되는 닭가슴살이 들어있다. 그것마저도 소스 없이 먹어야 한단다.
그 애가 떠올랐다.
어느 여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더운 어느 날. 동네에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그 애와 마주쳤다. 못 본 척하고 지나가기엔 정면으로 눈이 맞아버려 어쩔 수 없이 어색한 아는 척을 보냈다. 그때 그 애는 서 있는 게 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그 애의 손에도 같은 브랜드의 샐러드 봉투가 들려 있었다. 우린 서로 간단한 인사를 했고, 그 애는 작열하는 태양을 등지고 힘없이 웃고있었다.
"점심으로 샐러드 먹나 봐?"
그땐 눈에 보이는 게 그 샐러드 봉투라 어색함을 덜고자 한 마디을 붙였다.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응, 다른 건 살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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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나는 그애와 같은 반이었다. 하지만 그애와 난 서로 다른 무리에 속해있었고 손에 꼽히는 몇 번의 대화가 그애를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의 전부이다.
그러고 보면 그 애는 학교생활을 할 때도 항상 다이어트 중이었던것 같다.
"넌 왜 급식을 안 먹어?"
"살찌니까... 난 이것만 먹어도 배불러"
"야 너 살 뺄 때가 어디 있냐! 그리고 도시락도 무슨 풀떼기 뿐이네!"
가져온 도시락을 어렴풋이 생각하면 정말 '풀' 뿐이었다. 급식판에서 반찬 칸에나 들어갈 양의 풀..
그 당시 나는 4교시가 끝나는 점심 종이 울리면 경쟁하듯 친구들과 급식실로 뛰어갔고, 급식메뉴 유인물을 받으면 책상에 붙여두고 형광펜으로 좋아하는 메뉴를 표시 해두면서 점심시간을 기다렸다. 이런 나로서 그 아이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친구였다.
대화의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그 아이가 자기 머릿속엔 살 빼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다고 이야기 한적이 있다. 그리고선 동시에 음식 생각으로 가득 찬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1년 동안 같은 반이던 그 아이는 어떤 날은 피죽도 못 얻어먹은 창백한 얼굴로 힘 없이 행복해했고, 어떤 날은 혈색이 도는 반지르르한 얼굴로 우울해 하곤 했다. 혈색이 도는 날에는 아예 도시락도 안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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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있는 검정 옷을 꺼내 입고 문자에 적힌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자살이라 그랬다.
들리는 말로는 식이장애가 심했다는데 더 자세한 건 물어 볼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도 그날의 횡단보도 앞 그 아이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저녁에도 먹은 게 없는데 이상하게 속이 불편했다. 편의점에서 사온 까스활명수를 삼키며 티브이를 틀었다. 생각 없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며 채널을 돌리다 문득 그 아이를 닮은 연예인이 나오는 채널에 멈추었다.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외모의 연예인이었다. 사실 얼굴이 닮았다기보다는 체형이 그 애와 똑같았다. 그 애도 저렇게 마른 몸을 원했던 걸까? 그건 알 수 없다. 무엇이 그 아이의 평생을 다이어트라는 틀에 가둔 것일까? 스치듯 질문이 떠올랐다 티브이속 MC의 웃긴 말 한마디에 질문은 그저 흘러갔다.
며칠 속이 편치 않아 끼니를 못 챙겼더니 살이 좀 내렸다. 즐겨 입던 바지 허리가 살짝 커지고 매번 끼던 마스크가 헐거워졌다. 출근해 정신없이 일을 했다. 문득 문득 드는 잡생각을 떨치려 조금 더 일에 매달렸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동료들과 같이 지하의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운이 좋게 지금 다니는 회사 구내식당은 다른 회사에 소문이 날 만큼 맛이 좋았고, 메뉴 구성도 다채로운 편이라 직원들은 보통 밖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그날 점심 메뉴는 먹음직스러운 돈가스였다. 난 속이 않아 곁들여 나오는 수프와 샐러드만 받아 자리에 앉았다.
“ 정주임, 요즘 다이어트 하나 봐? 살이 좀 빠진 것 같아! 예뻐졌는데?”
“그러게~ 자기관리 잘 하네! 난 자기관리를 잘 하는 여자가 보기 좋더라고”
며칠째 속이 좋지 않아 먹지 못해 살이 빠졌는데 그걸 보기 좋다 하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정작 그런 말을 하는 본인은 터질듯한 셔츠에 그날 나온 돈가스를 두 개째를 먹으며 불쾌한 칭찬을 내뱉고 있었다. 식사예의를 알지 못하는 건지 입안에 씹혀지는 중인 돈가스가 보였다. 속에서 무언가 치받치는 기분이 차올랐다.
“아뇨... 요즘 속이 좀 안 좋아서 조심하는 중이에요”
“ 아 부럽다... 나도 속 좀 안 좋았으면 좋겠어~ 식욕이 너무 돌아서 미치겠다니까? 세끼를 다 먹으면 얼마나 죄책감이 드는지..”
이번엔 옆에 있던 미연 팀장이 거들었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먹는 행위에 죄책감을 부여하기 시작했을까... 나는 더욱 속이 거북 해졌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지 하루가 참 더디게 간 기분이다. 오늘은 지하철 환승이 버거운 생각이 들어 조금 돌아가지만 환승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를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 시간이라 도로에 차가 많다. 꽉 찬 도로 위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며 도로가 좀 트이길 기다리다 문득 옥외 광고판을 보게 되었다. 그곳엔 여성들이 모두 허리와 팔, 다리를 들어내고 자신의 몸매를 뽐내고 있었고 사진 속 여성들은 모공, 주름, 튀어나온 살 하나 없이 매끈하고 기이한 포즈로 서 있었다. 광고판이 걸린 거리엔 어린이, 학생들 모두가 다니고 있었고 대중교통 안에서도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곳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광고 속 모델의 모습을 가지면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 창밖에 두던 시선을 거두어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집 근처 정류장까지 왔다.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힘없는 몸을 겨우 이끌어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호통이 들려왔다. 가만 현관으로 들어서자 동생이 매트를 깔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호통의 주인은 화면안에 있었다. 살덩어리에 저주 같은 말들을 내뱉으며. 신발을 벗으려 내린 시선 끝엔 빈 샐러드 통이 발치에 채였고, 결국 나는 참을 수 없는 토기에 곧장 화장실에 달려가 모든 걸 쏟아내었다.
변기 속에 며칠동안 괴롭히던 응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쏟아졌다.
내가 뱉은 건 무엇일까..
연민..
역겨움..
측은함..
입을 헹구고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모두 개워냈다 생각했지만 이 화장실을 벗어나면 또 다시 응어리질 체기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