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마지막 학기가 마무리되었고, 곧이어 계절학기가 시작되었다.
계절학기에 한 과목을 더 들어야 졸업을 할 수 있기에 똑같이 아침에 학교에 오고 돌아가고, 운동을 하는 일상의 큰 틀에는 변화가 없지만, 왠지 모를 여유와 새로운 '리듬'을 갖게 되었다.
이제 막 시작한 새로운 '생활의 리듬'은 이 북북 찌는 여름과 장맛비가 쏟아지는 또 다른 여름이 교차하는 뜨겁고 시원함의 공존과도 같이 일상에 적절하게 녹아들고 있다.
하루 일과에 대해 한 번 쭉 살펴보면,
먼저 아침에 눈을 뜨고, 아침 식사 대용 단백질 쉐이크 만들고 도시락을 싸는 일부터 한다.
닭가슴살과 바나나, 우유 혹은 두유를 넣은 쉐이크를 갈아서 마시고, 종합비타민 한 알을 먹는다. 처음엔 닭 비린내때문에 쉐이크를 먹기 여간 쉽지 않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을 해 먹기도 편해졌고, 포만감이 점심시간 즈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요즘 나는 식단 조절을 하고 있어 닭가슴살과 빵, 토마토, 바나나, 견과류로 구성되어 있는 점심과 간식 도시락을 준비한다. 이제 막 시작한 관계로 3주간 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우선 싸가면 먹겠지라는 막무가내로 부지런히 준비를 한다.
나름의 긴 아침 준비가 끝나면 9시 수업을 위해 학교로 간다. 수업 전에 꼭 학교에 있는 1,200원짜리 커피를 사들고 강의실로 올라간다. 학기부터 만들어온 내 나름대로의 규칙이다. 출근 도장 찍듯이 조금 일찍 이 곳에 와서 커피를 사 가지고 강의실로 올라가는데 빼먹게 되는 날엔 어떤 불협화음이 일어날 것 같은 삐걱거림이 느껴지곤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듣는 이번 계절학기 수업은 듣고 싶은 욕심나는 수업이 없었기에 가장 여유롭다는 교수님의 수업으로 들어갔다. 피피티 없이 교재를 읽어가며 수업을 진행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분이신데, 중간중간 잡학다식(?)한 이야기들을 나름의 유머를 섞어 마구 펼쳐놓으실 때면 나는 멍하니 있다가 불현듯 들어오는 공격에 실소를 토해내곤 한다. 헛.
12시가 되면 식당으로 가서 싸온 도시락을 까먹는다.
내가 먹는 건 닭가슴살 방울토마토 따위의 것들이지만.. 옆에 다른 학생들이 맛있게 먹는 돈가스와 같은 것을 먹고 있다는 심정으로 우걱우걱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면 도서관으로 이동해 보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나는 땡기거나 안땡기거나 언제든 가방에 책 한 권씩을 넣고 다니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반납한 적도 많지만, 그래도 지금은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을 시기라 맘 놓고 책을 보려고 한다.
쭉 도서관에만 있다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데, 2시가 되면 미국에서 오신 교수님이랑 영어 클리닉 시간을 갖는다.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아 그나마 있던 표현력, 문장력도 많이 도태되었는데 조금씩이나마 연습할 기회가 생겨서 꽤 기대되는 시간이 되었다. 애리조나에서 오신 교수님은 한국 생활 6년 차이시며, 커피를 좋아하신다.
오늘은 이런 류의 만남의 초반에 다 그렇듯 좋아하는 음식과 각자 미국과 한국의 생활에 대한 미국인과 한국인으로서의 소회(?)를 나누고 헤어졌다.
학교에 딱히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는 나에겐 영어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3주간 모르던 어떤 한 사람을 꾸준히 만나면서 대화를 한다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을지 오후 일과로 차 없는 티타임과 같은 시간이 될 것 같다.
갔다 와서 간식을 먹고, 다시 도서관에서 책 읽기나 여러 가지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5시가 조금 넘으면 집에 돌아와 짐을 챙겨 운동을 간다. 월화수목금 각각 다른 신체 부위에 꽤 강한 힘을 들여 근육을 조여주고 단련시킨다. 이 무식해 보일 수 있는 행위를 통해 내 몸을 성장시키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유산소 30분을 추가하고 있는데, 이 지루한 30분을 어떡하면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지가 최근 시작된 큰 고민 중에 하나가 되었다. 후.
돌아와서 닭가슴살 혹은 소고기를 이용한 저녁식사를 하게 되면 대강 하루가 마무리된다. 여기에 영화 한 편을 보기도 하고.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들이지만 참 한결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고, 이 느긋한 생활에 어떠한 리듬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일하게 될 회사에서 배려를 해준덕에 이런 시간을 갖게 되긴 했지만, 나에게 여름은 늘 이런 여유와 채움이 수반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각자가 선호하는 계절과 각 계절에 맞는 각자의 리듬감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 여름은 조금의 여유를 갖고 몸과 마음을 채워나가는 시기로 최적이다. 체력을 단련하고, 최적의 몸을 만들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의 강도를 높이고, 나중에 보려고 미뤄뒀던 책들을 꺼내어보고, 넷플릭스의 영화 리스트를 훑어보기도 하면서 형성되어가는 나의 올여름 리듬감은 특별하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그 시절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잔잔한 추억이 담긴 2017년의 여름으로 만들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