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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규 Apr 30. 2017

상실의 필요성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6~7년전쯤 됐을까?


당시 베스트셀러부터 좋아하는 몇몇 작가들의 이전 소설들을 찾아가며 읽곤 했었는데,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려보는 스토리가 좋았고, 가끔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가슴을 저미는 문구들에 설레기도 했었다.


과거형처럼 얘기하지만, 지금도 왕왕 시간이 날 때마다 소설 한 권씩은 들고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땐 책도 많이 샀다. 고향집 책장은 이 시절 사둔 책과 대학 서적들로 채워져 있다. 지금은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이지만 이 때는 서점에서 몇 페이지 읽어보고 좋으면 그냥 바로 샀다. 책장을 채워가는 재미는 독서의 즐거움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대량으로 사기보다 주로 한 권, 한 권씩 샀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수는 아니지만 나름 한 권, 한 권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끔 한다.



어제는 고향집에 내려와 옷을 갈아입던 중, 문득 책장이 시선을 끌었다. 전에는 내 나름대로 책들을 분류하여, 작가별, 나라별, 장르별로 착착 정리해놨었는데 지금은 동생의 책장으로 바뀌어서 꽂힌 책의 스타일도,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정리된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그중, 가장 가운데에 꽂혀있던 '엄마를 부탁해'란 신경숙 님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를 '상실'해 가면서 엄마의 중요성과 빈자리를 느껴가는 책으로 아직 기억한다. 소파에 누워 읽으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마저 남아있고.



중요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 채워져 있을 때보다 이것이 '소멸'되었을 때 정말 소중했던 것이라고 남는다. 이 책을 통해 남겨두었던 대명제와도 같은 깨달음이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내 가족, 주변 사람들, 동료, 학교, 직장, 시절 등은 그것이 내게서 혹은 내가 그것에서 떠났을 때 비로소 얼마나 소중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소중함을 알기 위한 상실의 필요성.


'상실'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1. 기억, 정신, 자격, 권리 따위를 잃어버림.

5. 내용을 자세하게 앎.


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한자가 다른 상실이라는 단어지만 정.말.로. 잃어버림자세히 앎이라는 표현을 모두 갖고 있다. 비약일 수 있지만, 상실하면서 '상실'한다. 그 존재의 진짜 가치는 상실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러나 요즘은 대체할만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 관계로 상실로서 어떤 가치를 온전히 알기 힘들다. 수많은 관계, 수많은 대체품들로 상실이 그것의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기 이 전에 금새 대체된다. 대체됨으로 우리의 효용은 극대화되겠지만, '상실'을 상실하게 된다.




오늘은 놓쳤던 혹은 잃어버렸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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