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규 Mar 02. 2017

인턴 3년 차 ③

글로벌 테크 기업 한국 지사 인턴기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8월 중순 ,귀국길에 오르고 있었다.

오랜 비행 전, 공항에서 이메일 체크를 하고 있었는데 모바일 광고에 특화된 글로벌 테크 기업의 한국(APAC) 지사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와 있었다. 그래서 운이 좋게도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 곳에서 면접은 꽤 인상적이었다. 첫 면접은 사수로 일하게 될 분과의 1:1 면접. 국어책 낭독하듯 일관된 면접 형식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기에 이 때도 편하게 그냥 내가 해왔던 일과 이 곳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 등을 정리만해서 면접에 갔었다. 면접이 인상적이었던건, 사수분도 나와 눈을 마주치는게 어색했는지.. 어색한 상황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서로를 알아가는듯한 분위기속에 질문이 오고갔기 때문이었지싶다. 사수분은 주로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해 확인하고, 어떤 퍼포먼스를 냈었는지를 물어보았다. 회사의 상황과 업무에 관한 설명도 곁들어주시면서, 나의 질문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위협적이라 쓰고, '프로페셔널'이라고 읽는 어떻게든 꼬투리잡아서 물고 뜯는 방식의 면접보다는 내가 어떤 점에서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을지를 살펴보았던 기회 같았다. 나도 회사를 면접 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같이 일하는 사람을 뽑는 일이라면 업무 능력(가능성) + 궁합이 중요한거 같다. 사람이 섞여서 하는 것이 일이므로 결국 사람이 전부란 말도 있으니.. 그런 점에서 사수분은 본인과의 궁합도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았다. 인상, 분위기, 사고방식 등 면접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런 점들까지 최대한 끌어내서 판단하려는 거 같아보였다. 그래서 나는 공통 분모가 발견될 때마다 어떻게든 공감을 형성하려고 면접 중에 노력했다. 이전 업무나 인맥 등 겹치는 분모들이 생겨서 이 점들이 꽤 플러스 요인이 되었던 거 같다. 공감할 거리가 많았을수록 괜히 우리 팀이 될 수 있겠지란 느낌이 싹 오지 않았을까?


1차 면접 후, 2차 면접으로 HR과 같은 팀원이었던 디자이너분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얘기를 나눴다고 표현하는게 더 적합할거다.) 소개나 영어 소통 등 간단히 체크할 것만 체크하고 주로 내가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이것도 역시 편했었고, 편했던거만큼 나도 팀에 잘 녹아들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결국 며칠 후, 난 이 곳에서 마케팅 인턴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신뢰를 위한, 신뢰에 의한 콘텐츠 마케팅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을 할 때는 주로 디지털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들을 배웠었다. Marketo라던지, AdWords라던지하는 마케팅 툴들로 캠페인을 직접 실행하는 일을 했었다. 이 곳에서도 비슷한 디지털 마케팅 업무들이 주어졌다. AdWords를 통한 일본 검색 광고를 운영하고, Mailchimp로 이메일 캠페인을 진행하며, Unbounce로 랜딩페이지를 만들어 리즈를 창출하는 활동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인턴 생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활동은 콘텐츠 마케팅이었다.


내가 합류하기 전부터 팀에서는 콘텐츠 마케팅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교육적인 목적 + PR 효과 + 이슈 공유 + 업계 리더 포지셔닝 등 콘텐츠 마케팅의 목적과 효과는 크고, 다양하다. 그러나 글로벌 회사의 지사에서 콘텐츠 마케팅이란 그저 단순 번역, 배포가 될 수도 있다. 콘텐츠의 방향과 제작은 본사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나 지사별 상황에 따라 콘텐츠의 수정이 필요하거나 별도의 콘텐츠 브랜딩으로 새로운 포지셔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이 A사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APAC 지역, 특히 한국에서는 기본 개념, 트렌드, 교육 등의 목적에 맞게 본사 콘텐츠를 수정해서 로컬라이징하거나 브랜딩된 콘텐츠를 발행하였다. 분명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SEA 지역까지 커버해야하는 마케팅 팀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나는 콘텐츠 마케팅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B2B 마케팅은 흔히들 효과가 천천히 나타난다고 얘기한다. 시장의 반응을 그 때 그 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마케팅 활동들이 축적되어 '신뢰'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콘텐츠 마케팅에 자체적으로 힘을 쏟는 곳은 그렇지 않고 에이전시 등을 통해 대행하는 곳보다 결국 신뢰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꾸준한 결과물이 수반되어야하고.


'꾸준함'에 관해서도 인상적이었던 점을 덧붙이자면, 콘텐츠를 생성하는 일을 마케팅 팀에서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지사 내 전체 팀원들이 여기에 신뢰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는 점이었다. 마케팅 팀에서만 제작하는 콘텐츠는 시간적 한계가 있는 것과 더불어, 내용적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다. 실직적으로 해당 파트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때문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썰을 풀어 내기가 힘들 수 있다. A사에서는 각자의 포지션에 맞는(세일즈, 캠페인, 에치알 등) 콘텐츠를 직접 작성하여 마케팅 활동에 기여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간다. 그러나 사내 여러 분들은 마케팅 팀과 협력하여 고퀄(?)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기본적으로 콘텐츠 마케팅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서로 다른 팀이 이렇게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은 나한텐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생산된 콘텐츠는 적절한 시기에 다양한 곳에 배포되어야 한다. 마케팅팀에선 실험으로 콘텐츠 배포 시기도 조절하고, 어느 곳에 배포되어야 바이럴 효과가 클지도 판단하였다. 그 결과, 콘텐츠 조회수, 블로그 방문수, 뉴스레터 구독자 등 콘텐츠 소비와 관련된 지표들은 계속적으로 개선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도 콘텐츠에 대한 신뢰를 왕왕 전해오곤 했다.


결과적으로 협력 -> 양질의 콘텐츠 -> 시장의 만족 -> 신뢰 형성 -> 협력 과 같은 선순환 사이클이 형성되었다.


성장의 법칙


스타트업, 아니 어느 회사든 성장에 큰 방점을 둬야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동안 배운 점도 그러했다. 성장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기업이라고. 오늘 그동안 말 많던 스냅의 IPO Valuation이 산정되었다고 한다. 지난 해 $515M 넘는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스냅의 그 간의 성장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으로 $24B으로 IPO Valuation을 확정했다고 한다. 어쨋든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최근 우버 또한 핫하다. 사내의 성희롱 문제가 크게 붉어지면서, 단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반에 관한 문제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성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성장을 고민해보게 되었다.


A에서도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크게 봐서 매출 증대를 목표로 하면, 매출을 증가시키는데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각 파트별로 나누고 그 안에서 각 활동들로 세분화된 KPI를 설정하고 이를 얼마나 달성하는지 확인을 한다. 인턴에겐 KPI가 별도로 설정되는건 아니지만 회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각 포지션들이 어떤 활동들을 했고, 얼만큼 달성했는지는 공유를 해준다. 각 포지션별로 어떤 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KPI로 선정하는지를 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인턴만 해봤던 나에게 그런 정보들은 타 포지션과 회사 전체를 생각해 보는데 꽤 큰 도움이 되었다.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회사 전반의 방향을 맞추고 성장하는데 그런 지표들이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치만 나는 수치적 성장만이 성장을 온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버의 예에서 보듯, 다양한 관계로 형성된 조직과 사람이 모인 회사라는 유기체에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KPI 넘어 미지의(?) 요소들도 영향을 미친다. 이 곳 A사에서도 각자의 KPI를 넘어 회사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위의 콘텐츠에 관한 얘기에서와 같이 내 일이 아닌 일에도 적극적이기도 하고, 다른 포지션의 역할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세션을 잡아 공유해주기도 하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 시덥잖은 농담부터 일을 끝내고 남아서 보드 게임을 즐기기도 하는 등 성장의 '윤활유'와 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일에 대한 열정도 좋고, 목표에 대한 성취감도 좋지만 윤활유가 있어야 모든 것들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단순히 젊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다고 이런 것들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배려가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야하고, 건강한 마인드들을 가지고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고 본다. 주변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회사욕, 팀 험담, 상사 뒷담화등 회사 얘기=부정적 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이 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 개인적으로는 늘 재미있었고, 성장을 경험하며 지냈다고 생각한다. 이런 건강한 마인드가 KPI 넘어 미지의 요소를 구성하는 성장의 기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조직은 없다.


세상에 완벽한 조직은 없다. 우리 조직이 완벽하고 최고의 조직이라고 믿는 혹은 믿게 만드는 일은 조금 과하게 말해 사이비 종교적 신념이지 않을까. 이미 수 십년간 조직이 짜여진 큰 회사를 경험해봐도 막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에 있어봐도 완벽한 조직은 없었다. 아니 세상 만사에 완벽한 것이란 없지 않은가. 각자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네의 숙명이기도하고. 이 A사 또한 조직적 측면에서 특별한 모습들이 있었다.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을 수 있지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 나간 모습 중 인상적인 점들이 많았다. 또한 글로벌 회사의 지사라면 아마 비슷한 점들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먼저, 글로벌 스타트업의 APAC 총괄 지사겸 한국 지사였기 때문에 본사의 방향성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았다. 어느 회사에 가던 지사라면 비슷한 한계는 보일 수 밖에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본사에서 보내오면 그에 맞춰 마케팅 Material들을 제작해야하지만 로컬 상황이나 디자인 등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도 따라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들은 각 팀들이 본사와 어떻게 맞춰나가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지사 자체의 Ownership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점은 본사 혹은 타 지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열린 마음으로 활발히 진행하다보면 '어느 정도' 극복해내기도 하는 것 같다. A사는 기본적으로 열려있는 회사였다. 주어진 것만 하는 것보다 다양하게 시도를 해보는 것, 제안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비록 본사와의 시차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지연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요구 사항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열려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 점은 글로벌 오피스를 서로 협력시키며 운영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신기한 점은 사내에 필요한 포지션이 소수로 다양하게 압축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한 지사에 직원이 10명이라고 하면, 이 안에 세일즈, 마케팅, 어카운트 매니징, 캠페인 매니징, 에치알, 오피스 매니징 등 다양한 포지션이 있다. 소수의 인원으로 기능들이 나누어지다보니 팀의 타격이 개인의 타격이 되기도 한다. 맡게 되는 업무의 바운더리가 그만큼 넓어질 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크지 않나 싶다. 또한 소수이기에 팀 간의 긴밀한 협업이 매우 중요하기도 했고. 그러나 자칫 잘못, 팀간 불협화음이 일어나면 개인간의 충돌이 아닌 팀간의 충돌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팀웤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케팅 팀에서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면서 이런 긴밀함을 잘 활용하여 성공적인 역량을 발휘했던 경험을 했다. 만약 큰 조직이라서 각 기능(포지션)들이 큰 팀을 이루고 있었더라면 이런 협력이 어렵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각자의 역할을 각자가 찾아 나선다.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스타트업이다보니 주어진 업무를 데일리로 진행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성장할 일들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야한다. 막 시작한 스타트업에선 리소스가 매우 한정적이지만, 이 곳에선 조금은 더 유도리있게 새로운 실험이나 도전을 할 여유가 어느 정도 있었다. 이런 점들이 직원들에게 때론 스트레스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회사가 성장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면서 개인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어진 것 만을 해내는데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화에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5년 후 나의 성장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곳을 선택해야할지 분명해질거라고 생각한다. 3~4년 일한 직원들을 보면, 내부에서 다양한 포지션으로 이동해보기도하고, 본사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다가 오시는 분들도 계셨다. 도전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모습은 크게 배울 점이기도 했고, 조직의 유연성이 회사 성장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지난 긴 인턴의 시간이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 나는 마지막 학기를 위해 오랜만에 떨리는 마음으로 복학 첫 수업을 들었다. 사실 떨림의 가장 큰 이유는 걱정이 차지하고 있을테다. 정해지지 않은 앞날이 불안한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조직에 속해있다가 혼자서 떨어져 나온 것만 같은 기분은 불안함을 더욱 고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검증하고자 했던 건 나의 선택이었고, 길이었기에 행복하고 값진 시간들을 보냈던거 같다.


20대의 난 한 해, 한 해 성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미래도 밝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 지난 이야기

#3 인턴 3년 차 ②

#2 인턴 3년 차 ①

매거진의 이전글 인턴 3년 차 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