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은 의미였다.

쓰고, 그리고,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

by Eunjoo Doh


눈을 뜨고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얼떨떨하고, 가슴 은 멈출 줄 모르고 뛴다. 늘 변함없이 이루어졌던 루틴들은 갑자기 길을 잃어버렸다. 집중을 못 한 채 갈팡질팡한다. ’ 작가‘라는 소식은 하루아침에 모든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온 세상이 마비되어 버렸다.


2015년부터 삶의 작은 일상들을 짧은 문장으로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독서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해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독서는 글 쓰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보낸 지 어느덧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올해 들어 좀 더 본격적으로 제대로 쓰고자 제목도 달고, 글을 모두 쓴 후 몇 번의 수정을 마치고 나서야 완성을 한다. 조금씩 조금씩 나에게 만족스러운 글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난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한 후 불현듯 생각에 잠겼다.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브런치스토리"(brunchstory) 플랫폼이 떠올랐고, 문득 작가 신청을 해볼까라는 거침없는 용기가 생겼다. 응모에 선정되어 작가가 될 거라는 예상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생각보다 꽤나 어렵다는 여러 작가지망생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고, 될 때까지 시도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응모 조건으로 필요한 작품 세 개의 글을 신중히 골라 수정의 수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고르고 검지 손가락을 눌러 보냈다.


40대가 돼서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꿈을 꿨다는 어느 유명 여배우는 이렇게 말한다. "그 모든 고생했던 시간들은 버릴 게 없는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배우로서 다양한 배역에서 디테일을 갖출 수 있었죠.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표현하기 힘든 지점이 있거든요. 몸을 쓰며 보낸 그 시간이 전 저에겐 배우의 얼굴을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먼 이국땅에서 지독히도 외롭던 시간들, 딸 셋을 키우며 견뎌내야 했던 모든 힘든 시간들, 또한 딸들을 통해 기쁨으로 가득했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 거칠고 고된 이방인의 삶들은 버릴 게 하나 없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제 나의 글들을 좋아해 주시는 독자들에게 이 모든 시간들이 녹아든 위로의 글로 다가서려 한다.


누군가가 무심하고 익숙한 일상의 이야기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어느새 마음 한구석이 고요하고 따뜻한 온기로 채워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오늘도 변함없이 쓴다.

먼 훗날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과 그림이 담긴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만날 수 있길 고대하며.


모든 날들은 의미 없는 날이 없다.

9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2024년 뉴질랜드의 추운 겨울,

8월 초의 기록


딱 작년 이맘때쯤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뜻밖의 선물이 뚝 떨어졌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던 생각이 이렇게 커다란 꾸러미로 다가올 거라는 걸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나와는 전혀 닿을 수 없는 하늘 저 먼 끄트머리에나 있을까 말까 했던, 상상 속에만 있던 무형의 존재가 현실로 되었다는 것에 한동안 믿어지지 않아 꿈속을 헤매는 듯했다.


3개의 응모작을 보내놓고선 깜빡 잊고 있었으니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당선 축하 이메일을 받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눈을 몇 번을 마른 손으로 비볐을까. 혹시나 내가 잘못 본 건 아닌지, 나이가 들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핸드폰을 몇 분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빰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말에 실감하며 그동안의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가슴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것은 아팠고, 또 아팠고, 또 아팠다. 이제야 누군가 나의 모든 삶의 서사들을 알아봐 주나 싶었다. 서러움이 복받쳐 그토록 꺼억꺼억 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나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졌으니.


브런치 작가의 타이틀은 그저 그런 나의 삶에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게 했고 그것은 지루하기만 했던 하루를 꽉 채워도 모자랄 만큼 머릿속으로 온통 휘젓고 다녔다. 일단 에세이부터 다시 차분히 써보자는 의욕에 불타 틈만 나면 끄적거렸다. 그러다 마음의 진정이 웬만큼 되고 난 후 브런치에 올린 여러 작가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던 몸뚱이는 누군가 예리한 송곳으로 찌른 듯 금세 바람이 빠져 볼품없는 풍선처럼 훅 꺼져버렸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있었다는 것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창피함은 온몸을 파고들었다. 에세이스트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너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와 인지를 못했던 탓이었을까.


비슷비슷한 언어와 생각들, 바라보는 시선들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나만의 뭔가가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다다랗고 원래 하고 싶었던 어른을 위한 동화를 써봐야겠다는 다짐에 이르렀다.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고 그중 학교 때부터 아동도서의 일러스트에 관심이 많아 한동안 그쪽에서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을 낸 적도 있다. 그 바람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던 터라 그 작은 불씨를 제대로 다시 피워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때마침 출판프로젝트라는 소식은 불쏘시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일은 시작됐다. 하루하루 동화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풀타임으로 일하며 병행한 글쓰기와 그림은 대학 때의 공모전 출품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정해진 날짜 안에 완성품이 나와야 하는 전쟁 같은 상황.


열정은 밤에도, 새벽에도 불태우게 만들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먹고서는 곧바로 그림에 몰두하던 시간, 캐릭터가 마음처럼 안 그려져 새벽 4시에 벌떡 일어나 작업대에 앉아 시름하던 추운 겨울 새벽녘. 그러다 막바지에 이르러 포기할 뻔한 상황도 직면했다. 남편의 강한 설득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한 권의 책으로 영영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두 달을 거의 글과 그림 그리기에 미쳐 A4용지 크기의 18장 그림을 완성했고 총 14편의 단편 동화를 완성했다. 마감일 일주일 남겨놓고 손가락을 눌러 응모로 끝을 맺혔다.


힘겹게 보낸 시간들은 곧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또다시 힘겨운 시간으로 보내게 됐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발표일까지 기대하며 기다렸다는 것에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커다란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발표가 모두 끝난 12월,

나는 글쓰기를 멈췄다. 한 때 맑은 하늘에 잠시 잠깐 내린 소나기처럼.


큰 그림을 그리며 세운 앞으로의 거창한 계획들은 무의미해졌고 심드렁해졌다. 이토록 가벼웠던 존재였을까. 스스로 자책하기도 수십 번이었다.

글쓰기를 멈추고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일이 또 한 번 벌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커다란 바윗덩이가 몸에 내리쳤다. 그 어느 하나 흔들리는 전조현상 없이.


10년 넘게 다니던 일터를 3주의 노티스를 준 후 아무런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언제쯤 이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 평생 그만 둘 수나 있을까 했던 것은 순식간에 이뤄진 것이다. 깊은 상처에 베인 채.


일 년 동안 무의미했던 일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중이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그림. 나를 지탱해 주던 것들과 다시 조우하며 그 안에서 또다시 걸어간다.


“ 손님의 뒷모습을 짧게 배웅하고 나서 영주는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기분 좋은 느낌. 영주의 마음이 일터를 반긴다. 영주는 몸의 모든 감각이 이곳을 편안해함을 느낀다. 그녀는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말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해서 되뇌던 이런 말들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장편소설


강한 이끌림에 들른 도서관에서 만난 책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선뜻 손가락이 갔던 이 한 권의 책은 마음속에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돌덩이를 끄집어 내주었다.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것에 대한 의미가 아닌 나에게 다가오는 공간의 의미에 대해.


소설 속의 영주가 가장 편안함을 느꼈던 공간처럼 나의 모든 감각들이 살아나는 아늑한 공간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만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쓰고 그리며 살아간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


*황보름 작가에 대해 찾아보니 브런치북 매거진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커다란 위안이었다. 잃어버렸던 미미한 용기가 새록 돋아난다.



일러스트

Eunjoo D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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